지금여기에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곳, 지금여기에

취재/김경아 (starry9775@naver.com)
*본 인터뷰는 2018년 4월 진행된 인터뷰에 추가로 서면인터뷰 진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국가가 자행한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많은 수는 국가폭력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사람들이었다.

국가폭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딘지 무거운 느낌이 감돌아 선뜻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수많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억울함을 풀어주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며, 다음 세대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있다. 망원동에 위치한 ‘지금여기에’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 담당자 및 단체소개

▲ ‘지금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님

▲ ‘지금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님

Q.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여기에’에서 일하고 있는 변상철입니다.

 

Q. 지금여기에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2000년대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1987년 민주화 투쟁 이전인 권위주의 정권 때 있었던 여러가지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과거사 진실 규명이 있었어요. 그때 저는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에 있었습니다. 주로 조작 간첩이나 고문 피해자 분들의 사건을 전담했었는데, 2010년 12월 말일부로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산됐어요. 그래서 당장 2011년 1월 1일부터 진실 규명 신청을 하지 못하거나 확인되지 못한 피해자분들은 본인들의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진 거예요. 이런 일들을 누군가는 계속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2011년부터 관련된 일을 저희가 계속했고, 그 과정에서 2015년에 개인으로 하는 것보다 단체를 만들면 좋겠다 싶어서 단체를 만들었어요. 당시 고문ㆍ조작 간첩 피해자분들 중 재심에서 무죄를 받으신 분들 위주로 운영진들을 꾸렸고, 공동대표 3인으로 대표진을 꾸렸어요. 그리고 제가 사무국장 일을 맡아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 : 제3공화국 이후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가정보원 차원에서 행해졌던 인권 침해, 각종 범죄 행위를 진실 규명하기 위해 설치ㆍ운영된 국정원장 직속 민ㆍ관 합동기구
**진실화해위원회 : 반민주적ㆍ반인권적 공권력 행사 등으로 은폐돼 온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2005년 5월 31일 여·야 합의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제정됨에 따라 설립된 독립적인 국가기관

 

Q. 지금여기에가 하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저희는 크게 두 가지 일을 해요. 첫 번째는 진실 규명이에요. 탐정 같은 일이죠. 제보가 들어오거나 ‘내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으니 억울한 부분을 찾는 걸 도와 달라’고 하시면 진실 규명을 도와드리죠. 예를 들면 잘못된 점을 찾았을 때 그 점에 대해서 법률 지원을 하는 방법으로요. 저희 단체와 의견을 같이하고 공감해주시는 변호사분들과 같이 일하고 있는데요. 변호사분들을 찾아가서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고, 한다고 하시면 정보를 주고받거나 피해자분들을 찾아가는 일을 해요.

두 번째는 기록과 심리치유예요. 법적인 문제나 증거를 찾는 단계까지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기록은 실제 구술 기록집을 만드는 것과 기획해서 만드는 게 있고, 저희 활동가들이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것도 있어요. 피해자 심리치유로는 ‘달팽이 사진관’의 임종진 사진작가와 심리치유 사진 모임을 3년째 함께 하고 있어요. 사진을 본인들이 찍고 왜 그 사진을 찍었는지 이야기하면서 자기 상처를 들여다보는 거죠. 심리치유가 될까 싶었는데 뷰파인더를 통해서 사물을 들여다보고 셔터를 누르는 게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본인의 상처와 관련된 매개체를 찍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모임이 10개월 정도 되면 전시회를 해요. 저희는 그분들이 이야기할 수 있게 함께 따라다니면서 모임을 주관하는 거죠. 사실 이 부분을 저희가 해낼 수 있다면 좋겠어요. 특히 영상으로 기록을 해두는 일을 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Q. 피해자분들은 어떻게 만나시나요?

대부분 제보예요. 제가 위원회 때 만났던 분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이 본인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데, 법적으로 재심에서 무죄를 받으면 같이 감방 생활했던 동기한테 얘기하는 거죠. 이분들이 굉장히 끈끈해요. 짧게는 7년 길게는 19년씩 있었으니까. 하나의 예로 작년에 저희가 <벽촌사람들>이라는 전시를 했어요. 벽촌(碧村)은 푸를 벽자에 마을 촌자로, 푸른 수의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즉 감옥이라는 뜻이에요. 이 전시가 감옥 서예반 사람들이 모여서 진행한 전시였어요. 지금 저희 사무실에 신영복 선생님 글이 있어요. 이런 것들이 아까워서 저희가 서예반 분들을 추적해서 작품을 모아 전시했어요.

▲ 2017 옥중동인 서화전 (출처-seoulcitizenshall.kr)

▲ 2017 옥중동인 서화전 <벽촌(碧村) 사람들> (출처-seoulcitizenshall.kr)

Q. ‘지금여기에의 재정 상태는 어떤가요?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게 되면 국가로부터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것에 대한 형사보상금이 나오고요. 간첩 누명으로 인해 본인과 가족들이 피해를 보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민사배상으로 국가배상금이 또 나와요. 두 가지 배상금의 일부가 모여서 저희 단체가 만들어졌어요. 저희가 비영리 단체지만 사람을 뽑을 때 자신 있게 얘기했던 건 재정 부분이었어요. 지금 재정으로는 2년 반 정도 돌아갈 수 있어요. 저희가 지속 가능 분과를 따로 만들어서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지금 있는 사건들이 계속 무죄 판결이 나면 배상금이 기부금으로 들어오고, 지금보다 재정이 더 늘겠죠. 앞선 분들이 기부해서 활동 기금을 만들고, 그걸로 다른 분들을 지원하고, 그분들이 법률 지원을 받으면 다시 기부하는 방식으로 순환이 돼요. 피해자가 피해자를 돕고, 그 피해자가 다시 다른 피해자를 돕는 방식이에요. 미국은 우리보다 더 법률 서비스가 비싸서 변호사 없이 재판을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분들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 있었는데요, ‘우리도 그런 시스템으로 해봤으면 좋겠다, 시민단체가 기부방식으로 하면 좋겠다’ 싶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Q. 2015년에 서울잡스에서 인터뷰하신 적이 있으시더라고요.

운영을 막 시작하는 때에 서울잡스를 통해서 엄청난 인재가 들어왔죠. 어디 가면 다들 ‘어떻게 이런 일을 젊은 사람이 할 수 있지? 어떻게 여기 들어와서 이 일을 하지?’ 하고 되게 신기해했어요. 20대의 청년이 이런 일을 하면서 처음에 저희가 구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으로 단체가 돌아갔어요.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갔죠.

 

Q. 처음 구상과 어떻게 달라졌나요?

예를 들어 위안부 피해자분들과 함께했던 사람들은 오랜 시간 일을 했었기 때문에 대부분 나이가 많아요. 마찬가지로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중 많은 분이 1987년 이전에 있었던 분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60대 이상이에요. 저도 청년으로 시작했지만 40대가 넘어가고 그러니 운동 자체가 노령화가 돼간 거죠. 집회하거나 책을 만들고 법률안을 개정하는 옛날 운동 방식이었고 저희도 단체를 만들면 그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젊은 친구가 들어오면서 방식이 굉장히 다양해지고 만나는 사람들이 젊어졌어요.

먼저 <자유의 깃발 1919>라고 하는 보드게임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접촉하는 방법을 택했어요. 구술 기록집 같은 경우에는 이전에는 증언집 같은 것들을 만들었는데, 사회적 소수자들의 문제를 다루는 젊은 작가를 찾아보자 해서 은유 작가를 만났고 <폭력과 존엄 사이>라는 인터뷰집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그리고 이전에는 간담회 토론회나 증언들을 위주로 했었다면, 최근에는 <평화가 깃든 밥상>이라는 걸 했어요. 주변에 있는 청년들과 함께 피해자분들이 보내주시거나 만들어주는 음식들을 가지고 저녁 한 끼를 먹는 거죠. 그리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거대하게 집회 현장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떠드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했죠. 만약 나이가 많은 청년활동가가 들어왔다면 그런 방법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들여다보기 고통스럽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다가가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특히 이 문제가 우리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가 계속 이야기해줄 수 있게 하려면 세대 간의 교류도 되어야 하니까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반적인 문제라는 걸 얘기하고 싶어요..

“이 책은 약봉지처럼 각자의 이야기가 그림에 담겨 있어요. 이런 시도들을 하는 거죠.”

“이 책은 약봉지처럼 각자의 이야기가 그림에 담겨 있어요. 이런 시도들을 하는 거죠.”

Q. ‘지금 여기에가 제작하는 보드게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보드게임 같은 경우에는 원래 ‘이걸 가지고 간첩 얘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하면서 시작했어요. 그때는 보드게임에 대해서 정말 하나도 몰랐죠. 그러다가 2016년도에 국정교과서랑 건국절 논란이 있었는데요. 그때, 서울시 평생교육원에서 민주시민 교육 프로젝트를 공모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교육하기 위해 <자유의 깃발 1919>라는 주사위 게임을 만들기로 했죠. 보드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잘 모르니까 ‘보드게임 만드실 청년분들 모여주세요’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일러스트ㆍ게임 전문가분들이 모여서 판이 커졌어요(웃음). 지금도 그 모임이 2주마다 한 번씩 열려요.

작년에 서울시에서 주민자치협력계획을 보드게임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서,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에서 의뢰받아서 게임을 만들었어요. 주민 자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주민들에게 교육하는 교재로 만든 거예요. ‘민주주의나 인권, 주권에 관해서 설명하는 게 우리 단체와 크게 다르지 않겠다, 또 정치적으로 보면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국가 권력이 시민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죠.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담은 카드게임이에요.

그리고 올해가 4ㆍ3, 70주년이거든요. 그래서 4ㆍ3행사 준비 위원회에 저희가 시민단체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4ㆍ3 관련 보드게임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4.3과 관련된 보드게임 ‘꽃을 피워라’가 완성되었어요. 4.3사건 당시 사라진 마을에 꽃을 피워 4.3의 희생을 기억하고 역사를 회복하는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하반기에는 그걸 가지고 제주도에 가서 아이들에게 교육도 했습니다. 4ㆍ3 관련된 걸 하려 했던 이유가 저희 단체 피해자분들 중에서 남편은 간첩으로 조작되고, 아내는 4ㆍ3 때 군경에게 집안에 몰살당한 분이 계세요. 남편 분은 일본 가서 돈 벌고 돌아왔는데 간첩으로 몰린 거예요. 제주도에 굉장히 많은 조작 간첩이 있는데 그 배경엔 4ㆍ3이 있죠. 군인들이 학살하니까 밀항선 타고 일본으로 도망갔거든요. 이 사람들은 한국 정부에 반감을 품으니까 거기서 *조총련 활동을 하고 돈 벌다가 왔는데 간첩으로 몰려서 잡히고 이게 악순환이 되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4ㆍ3 관련 보드게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조총련 :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약칭으로 친북한계 재일본인 단체

보드게임이 굉장히 좋은 게 보드게임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우리 얘기를 꺼내기 편해요. ‘어이없고 황당무계하게 잡혀가는 사람들의 해프닝을 단서를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임으로 만들면 재밌겠다’ 싶어서 구상하고 있어요. 올해 목표는 ‘꼭 우리 게임을 탐정 게임으로 만들자’예요. 한편으로는 보드게임을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로 독립시킬까 생각 중이에요. 여기서 나오는 소스나 이어진 관계가 있으니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보드게임 중에 역사 보드게임이 우리나라에 거의 없거든요.

 

# 회사의 근무환경 및 조직문화

Q. 회사의 근무환경이나 조직문화, 복지는 어떤가요?

현재 직원은 남녀 2명에 20대와 40대예요. 새로운 분이 오시면 11월까지는 당분간 3명이 있을 거예요. 밖에서는 저희를 간사와 사무국장 혹은 활동가와 사무국장이라고 보실 수 있는데요. 저희가 만나는 단체들은 저희를 부를 때 직함으로 안 불러요. 그렇게 부르면 되게 어색해요. 보통 ‘커피(사무국장)’와 ‘자야(간사)’이라고 별명을 불러요. 사무실에서도 커피와 자야 이렇게 불러요. 업무적으로 다를 뿐이지 지위를 만드는 것도 싫고, 결국 그 지위가 딱딱한 부분을 만들잖아요. 가능하면 서로 존칭을 쓰려고도 굉장히 많이 노력하고, 밖에서도 비칠 때 위계질서 없는 조직으로 만들면 좋겠어요. 어떨 때는 저한테 너무 뭐라고 해서 약간 후회되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웃음). 보통은 제가 사건조사나 외부 활동을 위해 밖에 나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미안하기도 해요.

저희는 10시 출근 6시 퇴근이에요. 최저시급으로 계산을 해서 호봉을 산정하는데, 성인이 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로 나이별 호봉을 적용하고 있어요. 주변에선 ‘미쳤냐, 돈이 썩어나냐’ 하기도 해요. ‘받을 만큼 받고 열심히 일하면 되지 뭐’ 하는 편한 마음이에요. 단체 총회에도 그렇게 선언을 했어요. ‘재정이 없으면 끝난다. 단체가 아쉬우면 기부를 더 해라’라고 했어요(웃음).

제가 공직생활을 8년을 했는데요. 그래서 복리후생이나 근무조건들은 공무원에서 쓰고 있던 것들을 다 가져왔어요. 예를 들면 공직에서는 급여 수준의 50% 상여금을 명절수당 2번, 휴가수당 1~2번이 있었어요. 그걸 다 주려고 하니 총회에서 재정적으로 부담된다고 하도 그래서 50만 원씩 줘요. 연가는 공무원 수준으로 20일 있었는데 잘 안 썼거든요. 바쁘니까. 그래서 겨울에 3주 정도 겨울 휴가를 써요. 혼자 쓰라고 하면 잘 안 쓰니까 같이 문을 닫고 여행을 멀리 가거나 하죠. 그런 에너지가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버티게 하는 것 같아요. 본인이 즐겁지 않으면 이 일을 못 해요. 안되면 접으면 되니까요. 단체가 책임질 수 없으면 닫아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가 있어요. 자신이 맡은 일은 확실하게 완수해야 하고, 업무는 언제든 공유했으면 합니다.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보면 헌신하는 마음이 고맙기도 했지만, 책임감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Q. 외근이 많을 것 같은데 비율이 어떻게 될까요?

그렇죠. 외근 많아요. 이런 일을 하다 보니 마을(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회의도 많이 불러요. 또 정기적으로 보드게임 만드는 거나 심리치료 같은 건 장소를 따로 빌려서 하거든요. 책을 만들려면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도 있지만 전문작가들과 협력해서 만드는 건 보통 출판사들과도 협의해야 하고요. 일러스트 작가나 웹디자이너도 만나야 하고요. 온라인으로 주고받으면 일이 잘 안 되고, 가서 얼굴 보고 도장 찍고 와야 일이 되더라고요. 변호사 만나거나 현장 피해자들 만나는 경우도 많아요. 업무 중에 반 정도는 외근인 것 같아요.

최근 저희가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 겸 기념관을 만들고 있어요. 현재 설계도가 완성되어 건축허가를 신청한 상태입니다. 빠르면 11월 중에 공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제주도의 조작 간첩 피해자분 중에 한 분이 국가배상을 받게 됐고, 그중 일부를 저희 단체에 쾌척하신 거죠. 그 분이 집터에 기념관과 숙박시설을 만들겠다고 하셔서 소셜 건축하시는 분들과 건축 설계도 하고 있어요. 올해 1월 제주 피해자분들과 모여서 ‘어떤 건축하고 싶은지, 어떤 내용, 이야기를 담을까, 몇 층짜리 만들까’ 하면서 3일 동안 워크숍을 했어요. 그 일도 하려면 서울과 제주도를 왔다 갔다 해야 하고, 개관하면 공간 매니저도 필요해요. 가능하면 ‘지금여기에’를 좀 아는 사람이 갔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번 채용에 그 부분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제주도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분들과 함께한 워크숍

▲제주도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분들과 함께한 워크숍

 

# 모집 분야 및 상세한 업무 내용

Q. 이번에 들어오시는 분은 어떤 업무를 하시게 되나요?

앞서서 말씀드린 단체가 하는 일 부분에서 진실규명은 거의 제가 특화된 부분이라 전담해서 하고 있고요. 새로운 들어오시는 분은 기록과 심리치유 부분을 맡으실 예정이에요. 구술 기록집이나 기획 책자를 만들거나 기획하시게 될 거예요. 그리고 사진 치유 모임을 운영하실 예정이에요. 더불어 간단한 사무실 운영을 하시게 돼요. 저희가 채용하게 되면 11월까지 인수인계의 형태로 일을 같이하게 될 거예요. 사실 아주 짧을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선생님들(피해자분들)을 익히는 것도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Q. 어떤 분이 들어오셨으면 좋을 것 같으세요?

쉽게 일을 단념하는 성격이라면 지원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타인의 고통을 대면하고 마주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거든요. 만만히 봤다가 도망가기 바쁠걸요.(웃음) 국가폭력피해자를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오시는 게 좋아요. 그리고 공감 능력이 좋은 분이 오셨으면 좋겠고요.

지식 같은 것들은 아무리 많이 공부하고 관심이 있었다고 해도 결국에 여기 들어오면 여기 사람들이 낯설기 때문에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고요. 저는 듣기를 잘 하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어요. 피해자분들은 다른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자기 말을 들어주기를 원하거든요. 아마 같이 이분들은 만나면 알겠지만, 억울한 것들이나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자세에 대해서 굉장히 고마워하시거든요. 사건조사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하면 뭔가 단서들이 잘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성격이 급하지 않은 분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급하기 때문에 그건 충분하고요. 급하지 않고 나는 정말 여유 있게 일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봤을 때 속 터지겠다 싶을 정도로 여유 있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서로 지치거든요.

 

Q. 채용과정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지원 서류 제출은 11월 8일까지예요. 서류 받고 개별면접 후 면접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곧바로 채용할 예정입니다.

 

Q. 지원하시는 분들이 서류나 면접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저는 밝은 성격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재밌고 유쾌한 사람인 분이라면 서류나 면접에서 드러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냈으면 좋겠어요. ‘저는 어렸을 때~’ 이런 말보다는, ‘이분들에 대한 감정공유를 어떻게 할 수 있겠다’, ‘피해자분들을 바라볼 때 이렇게 바라보면 좋겠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청년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다’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방법들을 제안해주셨을 때, 좋다고 생각이 들면 물론 채용할 거고요. 그 방법을 실행하도록 지원해줄 거예요.

가능하면 2년 이상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현재 재정 상태에서 2년을 이 상태로 갈 수 있으니까요(웃음). 사회적 박탈을 당했던 피해자분들은 사실은 자아가 상실되었던 거잖아요. 상실이라는 것은 굉장히 큰 거거든요. 소멸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정말 모르는 일인데 이 상실됐던 사람들은 그냥 내가 튕겨져 나온 경험뿐 아니라 가족, 자식 이런 사람들과 떨어져야 이별을 했던 고통이 있던 사람들이에요. 그분들과 관계를 맺었는데 금방 나가면 ‘내가 문제인가?’ 하는 상실감을 또 느끼게 되거든요. 가능하면 선생님들과의 관계를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욕심이 크죠?(웃음)

▲ 은유 작가와 함께한 인터뷰집. “가실 때 저 책 가져가셔도 돼요.”

▲ 은유 작가와 함께한 인터뷰집. “가실 때 저 책 가져가셔도 돼요.”

Q. 이곳에 지원하게 되실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저도 20대 때 일반 기업과 대기업에서 일을 해봤고 공직 생활도 해봤지만, 결국 사람 사는 일은 다 똑같고 어디서나 갈등은 똑같이 일어나더라고요. 문제는 그걸 쌓아놓지 않고 얼마만큼 빨리 풀려고 노력하느냐의 부분인 것 같아요. 싸워서라도 갈등 해소가 그때그때 되는 거죠. 한 번 크게 터지는 사람들은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면 단체에서는 최면도 하고 심리치료 같은 방법으로 어떻게든 지원을 할 거예요. 사무실에서 발생했던 일이니까 그런 것들은 당연히 사무실 몫이고, 그때그때 상담과 치료를 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한 거죠. 그냥 머리 아프거나 감기가 오면 약국 가서 약을 먹는 것처럼, 심리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을 받거나 최면을 하고 펑펑 울면 되게 시원하고 굉장히 큰 치유가 돼요. 그게 쌓이면 큰일 나기 때문에 빨리 소통을 해서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는 거예요.

보통 처음에 오면 감당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저도 20대 때 나눔의 집이라는 곳에서 할머니들과 먹고살면서 3년을 일했거든요. 위안부 관련 일은 굉장히 힘든 데다가 남성이 접근한다는 것에 대한 위화감이나 거부감이 있었죠. 광주 원당에 들어가서 수도승처럼 6일을 먹고 자고 하루 나와서 생활하다가 다시 들어가는 일을 3년 반복하다 보니까 저한테 생기는 고통지수가 굉장히 높아지는 거예요. 제가 강간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누군가가 저를 강간한 것 같고, 고문을 당하지 않았거나 쫓기지 않았어도 쫓기는 것 같았어요. 여기도 마찬가지거든요. 아무래도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이 더 많으니까요. 사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면 그런 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이 10이라 하면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은 8, 9 정도의 고통을 느껴요. 그런 것들을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회사명 지금여기에
회사업종 시민사회단체
근무내용 구술기록집, 사내 소식지 발간, 회계정리 담당
모집직종 사무직
고용형태 정규직(신입/경력)
급여 신입기준 연봉 1,800~2,400만원(수습기간 3개월 80%지급)
근무지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244-4 104호
근무시간 월~금 / 10:00~18:00
4대 보험 유/무
휴일휴가 공휴일, 휴일, 그 밖에 내규에 따른 휴가일수
복리후생 복지규정에 규정된 복지정책에 준함
지원자격 없음
요구 인물상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즐기며 일하는 자주적인 파트너
모집기간 20181025 ~ 20181108
채용예정인원 1명
전형과정 서류→면접
홈페이지 cafe.naver.com/thistime2015
전화 010-3089-9808
이메일 thistime2015@naver.com
기타 *지원방법
-이메일(thistime2015@naver.com)로 자기소개서와 졸업증명서 제출
-면접 채용일자 추후 개별 고지

*SNS
-페이스북 : www.facebook.com/2015this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