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른 2020년 결산] 취업 준비, 세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2020-11-19T08:50:42+00:002020. 11. 19.|

서류부터 면접까지 거절의 시간을 통과하며 

 

글. 김소영(bonnygirlksy@naver.com)

 

퇴사하고 백수로 지낸 지 어느덧 8개월이 흘렀다. 돈이 떨어졌다. 당장 다음 달에 내야 할 교통비, 통신비, 보험비만 생각하면 암담했다. 제일 먼저 멜론, 왓챠, 북클럽 같은 정기권들을 해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푼이라도 아쉬운 이때 영화니, 음악이니 다 사치처럼 느껴졌다. 수중에 남은 돈 50만원. 사람 만나는 거 줄이고, 집에서 그저 숨만 쉬면서 버틸 수 있는 시간 딱 한 달.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취업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좀 더 쉬고 싶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돈이 없다는 현실은 너무나 강력해서. 설령 진짜 취업할 상태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 마음을 받아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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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무조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이력서를 쓰고 또 썼다. 20대 후반에 변변치 못한 스펙을 끌어안은 나를 잘 포장하고 다듬느라 진땀을 뺐다. 그때는 1초라도 좋으니 그 무수히 많은 서류 더미 속에서 내가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기업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기업이념, 인재상, 비전까지 샅샅이 훑고 그걸 바탕으로 이력서,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그밖에 기업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았다. 공을 들일수록 기대는 점점 더 커져서 온갖 상상을 했다. 면접 보는 상상, 첫 출근 하는 상상, 첫 월급을 받고 그동안 미안하고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는 상상. 하지만 서류는 높은 확률로 ‘응답’하지 않았다.

기대만 하진 않았다. 무섭기도 했다. ‘근데 진짜 서류 합격하면 어쩌지?’ 기괴한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일차원적으론 면접 보는 게 무서웠고, 근본적으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려웠다. 취업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소리치던 내면의 목소리는 이런 방식으로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다. 전 직장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회사 문화. 선배들의 은근한 괴롭힘. 회사생활은 다 그렇다고 정신력으로 이겨내라던 조언들. 이번에 들어갈 회사도 그러면 어쩌지. 긴장감에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나는 너무 쓸데없이 예민하기만 하다면서 자책의 칼날을 더욱더 뾰족하게 갈았다.

면접은 어떻고. 그 평가 당하는 분위기를 잘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감 넘치는 자기소개서의 나와 현실의 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 번은 서류에 합격해서 면접까지 간 적이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 새롭게 나타난 방식,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면접이었다. 유튜브 같은 곳에선 비대면 면접일수록 상대방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그 ‘말’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버벅대면 어쩌지. 말실수하면 어쩌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예상 질문지를 만들고, 친구들과 여러 차례 화상으로 모의 면접도 보고, 연습도 많이 했다. 막상 실전에선 예상하지 못했던 높은 난이도의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심하게 당황했고 더듬거리면서 말도 안 되는 말을 이어갔다. 면접관은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슬슬 정리하기 시작했다. 면접은 15분 만에 끝이 났다.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엄청난 박탈감을 느꼈다. 면접 기회를 얻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친 내가 너무 못나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면접 보던 장면이 재생됐다. 더듬거리는 나, 당황하는 나. 나는 그 장면을 절대 극복할 수 없을 거라는 좌절감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훨씬 더 복잡한 모양의 양가감정에 시달리면서 이력서를 넣어야 했다. ‘제발 서류 합격하게 해주세요. 아니야 면접 보기 무서워. 그냥 떨어지게 해주세요.’ 면접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고 만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면접 스터디라도 하자고 알아보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공무원, 승무원, 경찰 같은 색깔이 뚜렷한 직업을 위한 면접 스터디는 많지만 내가 가려고 하는 직업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면접 컨설팅을 받자니, 3회에 백만 원이 훌쩍 넘어서 엄두도 안 났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면접 준비는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벽을 보면서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어려워? 그럼 천천히 해

 

도대체 취업 어떻게 하는 걸까. 이때만큼 희망 없고 울적한 기간도 없다. 혹시라도 어디서 연락 올까 핸드폰을 하루종일 손에 쥐고 살 게 되고, 모든 알람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기다렸던 연락이 아니면 하루에도 수십번 실망하고, 연락이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초조하다. 서류나 면접에 탈락하면 나라는 사람 전체가 거부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하루 이틀은 엎어져 있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과연 쓸모가 있는 사람일까 고민하게 되고, 무언가를 해낸 사람, 해내고 있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세상은 나와는 상관없이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가고 싶었던 회사의 서류 합격 발표일이었다.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통보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핸드폰 소리를 크게 키워두고 등산을 하러 갔다. 하루종일 핸드폰만 붙잡고 전전긍긍하기 싫어서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갔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핸드폰은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하루종일 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진 말자고 미리 다짐 비슷한 것도 했다. 정상에 오르니 가을바람이 시원했다. 땀을 식히며 생각했다. 이 길로 집에 내려가면 오늘은 좀 쉬자고. 그동안 너무 여유 없이 허겁지겁 쉴 틈 없이 달리기만 했으니까.

이제 한 달 조금 넘게 취업 준비를 했을 뿐이지만 반복적으로 거절당하고 자책했던 지난 시간으로부터 회복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은 ‘힘듦’에도 기준을 둔다. 마치 이력서 100통은 넣어보고 좌절하는 거냐고 말하듯이 ‘100통’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100번이라는 숫자에 도달하기도 전에 엎어질 수도 있고, 쉼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정신력으로만 이겨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무엇보다 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청년들에게 그것 말고도 요구되는 것이 많다. 고학력, 고스펙, 풍부한 경험. 100번 도전해도 깨지지 않는 정신력까지 겸비하기에 어깨에 짊어진 게 너무 많다. 거절에 익숙해지는 방법은 많이 경험하는 것이지만 그 방식이 친절하지 않은 취업 시장에선 필연적으로 자기혐오, 좌절, 불안과 같은 감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취업 준비가 장기전으로 갈수록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이 아니라, 쓰러지는 나를 이해하는 마음가짐이다.

산에서 내려온 그 날은 끝내 회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조용히 무음모드로 돌려놓았다. 사람인, 잡코리아 같은 구인 사이트도 그만 헤집었다. 대신 맛있는 밥을 먹고 일찍 침대에 누웠다. 매일같이 자소서를 쓰느라 혈안이 됐던 눈을 쉬게 해주었다. 막 급하게 어디든 취업하고 싶어서 서두르기만 하던 요즘이었다. 그에 비해 좋지 않은 결과에 낙담만 했던 나날이었는데. 딱 일주일만 이대로 쉬어야지. 아직은 이렇게 웅크렸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방법밖에 모르겠다. 책 <할머니의 좋은 점>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어려워? 그럼 천천히 해” 어려울 땐 서두르지 말라는 말을 길잡이 삼아 이 시간을 통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