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른 2020년 결산] 2020 이대론 못 보내

2020-11-18T12:04:12+00:002020. 11. 17.|

삶에 대한 불안감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법

 

김혜원(cara6295@naver.com)

 

학교에 다닐 때는 소속감이, 졸업하고 회사에 다닐 때는 주 5일 출근이 피곤하고 힘들어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대처하는 꽤 강력한 루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영역이 있었다. 그래서 작년 10월에 퇴사했지만 갑자기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많은 것들이 정지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새롭게 해보려던 시도들도 별 성과 없이 싱겁게 끝나고 다시 취업해야겠다 마음 먹었지만 재취업 준비가 점점 길어졌다. 뭔가 하고 있긴 한 것 같은데 잡히는 것 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영역에 삶의 루틴을 만들어야 했다.

 

글쓰기

 

루틴의 필요성을 느낀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나의 안 좋은 습관 때문이다. 그건 바로 취미로 시작한 일들을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기보다는 그 자체의 숙련도나 세세한 디테일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재미로 시작한 일을 지칠 때까지 하다가 끝까지 마무리를 못하고 끝날 때가 많다. 몰입하는 순간은 참 즐겁고 행복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하기에는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스스로에게나 가혹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세한 디테일에 집착하다 보니 끝마무리를 잘하지 못하고, 내 결과물에 단점만 보이게 되니 부족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작은 성취들은 부족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나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어떤 반응을 얻었을 때였다. 내가 가진 현재의 능력치로 어떻게 나를 표현할 수 있을지가 제일 중요하고 그게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그림을 그릴 때 내가 얼마나 그림 묘사를 세세하게 하고, 피아노를 칠 때 손이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와 같이 세세한 것에 집착하다 보면 흥미를 잃어버리고 쉽게 지쳐버린다. 그리고 나는 무력감에 빠진다.

 

100일동안 뭐라도 꾸준히 한다면

 

100일 글쓰기 첫 날 블로그에 쓴 글

100일 글쓰기 첫 날 블로그에 쓴 글의 일부

 

최근에는 개인 블로그에 100일 글쓰기 도전을 하고 있다. 시작이 제일 어려운 나는 스스로 강제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종종 사용한다. 혼자 시작하면 절대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컨셉진이라는 한 월간지에서 진행하는 ‘컨셉진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에 보증금 5만 원을 내고 참여했다. 100일 중 글을 쓴 날짜의 비율만큼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10월 1일부터 시작해서 2021년 1월 8일에 끝나는 여정이다. 함께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생각보다 큰 동기부여가 되고 간혹 내 글에 공감하거나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하지만 대다수 날은 도저히 쓸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 오랜 시간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다.

발행 버튼을 누르는 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도 두 눈을 꼭 감고 발행 버튼을 누른다. 내 목표는 잘 쓰는 게 아니라 꾸준하게 쓰는 것이니까. 어떤 날은 자정이 지나기 15분 전까지 정말 쓸 말이 하나도 없어서 쓸 말이 없다고 써버렸다. 정말 글을 매일 쓴다는 것 이외에 다른 모든 것과는 타협한 글쓰기를 보면서 내가 100일 글쓰기와 루틴에 너무 큰 환상과 기대를 거는 게 아닌가 싶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많다. 공개 글로 글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느 날은 내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 같아 어느 정도 솔직해야 하는지 고민되고 그래서 이야기를 덜어 내다보면 오늘 스케줄의 건조한 나열이 되는 것 같아 아무것도 못 쓰는 지경에 이른다.

 

네이버 밴드에 인증글을 올리면 이렇게 달력에 표시가 된다. 저 초록색 동그라미를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네이버 밴드에 인증글을 올리면 이렇게 달력에 표시가 된다. 저 초록색 동그라미를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매일 자정이 지나기 전에 쓴 글을 인증해야 하는데 어느 날은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12시를 넘겨버렸다. 다 지워버리고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싶다가 인증은 못 했지만 글은 쓸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다시 글을 써서 올리고 잠이 들었다. 100일 글쓰기를 무사히 완주하면 그동안 쓴 글을 출판할 기회가 주어진다. (3일까지는 인증에 실패해도 인정해준다) 전체 참여자 150명 중 1명을 뽑는 것인데 출판 도전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정말 매일 글을 쓰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 나랑 지킬 수 있는 약속은 딱 그 정도인 것 같다. 우선 이번에 100일을 쓸 수 있으면 다음에 또 100일을 쓸 용기가 생길 테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책을 쓰고 싶은 용기도 낼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고 내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 꾸준함을 증명해내고 싶다. 적어도 실패한 것이라도 기록으로 남기면 그 시도들이 그냥 증발해버리는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하는게 나를 긍정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믿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20년, 욕심내지 않고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힘을 길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