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른 2020년 결산]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2020-11-18T12:01:11+00:002020. 11. 15.|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글,사진/조은진 (ziziej@gmail.com)

 

“작별할 시간을 주는 이별에 하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후회를 남기지 마세요”

네이버 웹툰  ‘당신의 향수’ 중

 

나는 노령의 반려견과 살고 있다. 이제 약 16살이 된 이 친구의 이름은 비비이다. 비비는 유기견이었다. 어느 날 엄마와 동생과 함께 집에 가는 길에 근처 남자 중학교 아이들이 낄낄거리며 무언갈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그 중심에 있는 건 하얀 강아지였다. 헌데 분명 하얄 터인 얼굴과 귀 그리고 꼬리가 퍼렇게 칠해져 있었다. 그 불쌍한 아이는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엄마는 화가 나서 남자애들을 혼내고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우리의 인연은 그 작은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린 녀석을 안아 들고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선 아직 강아지를 찾는 사람은 없다 하였고 만약 이곳에 맡기게 되면 기간 내에 주인이 안 나타날 시 보호소에 보내져 안락사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우리 집에서 녀석을 임시 보호 하기로 하고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동네에 있는 모든 동물병원 전단지를 돌렸지만 긴 시간 동안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녀석과 함께 있는 시간은 길어져 갔다. 어느 정도 정이 들어버린 나와 동생은 이렇게 된 거 우리가 키우자고 했지만, 부모님은, 특히 아빠는, 극구 반대하셨다. 실은 그전에도 유기견을 키운 적이 두 번 있었다. 하지만 두 마리 모두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집을 나가버렸고, 부모님은 그 일들을 계기로 다시는 집에 강아지를 들이지 않기로 하셨다. 이 파란 매직이 칠해진 아이를 잠시 맡았을 때도 부모님의 그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이는 다른 집에 보내기로 했다.

 

나의 하나뿐인 막내, 비비

나의 하나뿐인 막내, 비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강아지가 다시 돌아왔다. 파양 당한 강아지는 또 금세 다른 사람이 데려간다고 했다.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아이를 다시 보냈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녀석이 또 파양되었다. 두 번씩이나 다시 돌아온 것이다. 두 번의 파양에 아빠도 이놈과 우리가 무슨 연이 있나 보다, 하시며 이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끈질긴 연 끝에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비비와의 시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잃어버릴 뻔한 적도 많았고 중간중간 작은 일들이 많았다.  그래도 비비는 건강했다. 열 살이 넘어도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고 대부분의 몸이 튼튼했다. 새끼를 낳고 몇 년 후 자궁축농증 때문에 수술을 한 것을 제외하면 비비가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은 없었다.

그런 비비의 이변을 눈치챈 건 내가 해외에서 1년 반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비비는 고개가 거북이처럼 내려가 있었고 걷는 자세가 이상했다. 신나서 소리를 내는 일도 없어졌고 뛰어다니지도 않았다. 식탐이 없어 절대 먹는 것에 달려들지 않는 아이였는데 먹는 것만 보면 눈이 뒤집어져서 달려들었다. 비비가 낯설었다. 내가 아는 비비의 모습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알고 보니 비비는 내가 집에 없던 동안 크게 아팠다고 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더위를 먹어 몸에 이상이 온 것이었다. 혈변을 누고 사료를 먹지도 않고 말라갔다고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비비는 눈에 띄게 상태가 안 좋아졌다.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아팠다는 것도, 또 비비가 이렇게 변한 것도 믿기 힘들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나는 한국으로 아예 돌아왔고 비비는 여전히 마른 모습으로 나를 반겨줬다. 그래, 큰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 괜찮을 거야. 나의 강아지는 앞으로는 건강할 거야. 그런 마음으로 비비를 꼭 안았다. 하지만 인생에 고비가 단 한 두 번만 올 리가 없었다. 이듬해 여름, 비비는 더욱더 심하게 아팠다. 심장이 안 좋아 폐에 물이 차서 입원했고 의사 선생님은 오늘이 고비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보다 현실감 없는 말이 있을까? 분명 어젯밤만 해도 내일 병원에 가서 진료받으면 다시 건강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니. 그런데도 나와 부모님은 일을 가야 했다. 동생이 비비를 보기로 하고 나는 엄마의 차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차 안이 고요했다. 무거운 침묵 끝에 엄마가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만약 더 안 좋아진다면 안락사를 해야 할까?”

“…….”

“우리의 이기심으로 비비를 괴롭게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차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어떻게 회사에 가고 어떻게 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계속 갑자기 눈물이 나서 조용하게 울고 비비를 보기 위해 조퇴한 것만 기억한다. 다행히도 비비는 잘 견뎌주었다. 흉수가 많이 빠졌고 퇴원을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비비를 둘러싸고 앉아서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다. 비비야. 비비야. 고마워. 다음날 병원에 가자, 비비는 회복이 빠른 편이어서 다행이라며 앞으로는 평생 심장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큰 폭풍이 지나갔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거라 생각한 게 무색하게 몇 달 뒤 비비는 췌장염에 걸렸다. 가족이 번갈아 가며 배변 패드로 감싼 비비를 안고 밤을 새웠다. 췌장염은 강아지들이 큰 고통을 느끼는 병 중 하나라고 한다. 비비도 많이 아픈지 내내 힘 없는 목소리로 신음을 내다 이내 그것도 힘이 드는지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너의 병을 그냥 내가 가져가면 얼마나 좋을까. 꽉 안으면 네가 아스라질 것 같아 널 꼭 안지도 못한 채 울었다. 그때의 췌장염이 만성이 되어 몇 달 전에도 병원에 갔지만, 다행히 회복이 빠른 비비는 잘 견뎌 주어 아직도 내 곁에 있다.

 

약을 먹는 비비, ‘아’라고 하면 입을 벌린다.

 

비비는 뼈밖에 안 보일 정도로 살이 빠졌다. 보통 3kg였던 아이가 이제는 1.7kg 정도밖에 나가지 않는다. 허리도 완전히 휘어서 고개를 들고 걷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걸을 수 없다. 머리부터 쓰다듬으면 우둘투둘한 뼈만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고 있고 누군가와도 반응하지 않는다. 신나서 짖는 소리는 못 들어본 지 오래다. 비비는 정말 늙은 개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너는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네가 나에게 안겨 나를 올려다볼 때 나는 너의 그 바랜 눈에서 우주를 본다. 네가 사랑스러운 만큼 두려움 또한 크다. 집에 돌아와 너의 이름을 부르고 너의 집에 가서 가만히 있는 널 보면 덜컥 무서워서 널 깨운다. 그럼 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게슴츠레하게 본다. 그러면 나는 그게 안심에 돼서 한숨을 내쉬고 너에게 뽀뽀한다. 네가 가만히 있으면 온몸을 경직한 채 너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지 보고 그제야 힘을 푼다.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널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분명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아왔는데 왜 너의 시간만 짧은 것일까?

비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점점 실감이 나자 나는 죄책감으로 짓이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너에게 좋은 반려인이었을까. 좋은 주인이였을까. 나의 이기심과 게으름이 너를 괴롭게, 혹은 아프게 하진 않았을까. 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 반복했고 돌아오는 건 끝없는 자기혐오였다. 이렇게 너를 보내면 나는 평생 죄책감이란 병에 담겨 절여질 거야. 너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내 삶엔 후회밖에 남지 않을 거야. 꽤 오랜 시간 그런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네가 나와 가족을 보며 꼬리 끝을 조그맣게 흔드는 모습을 봤다. 비비는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그저 우리를 사랑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이 시간을 사랑으로 채워도 부족한데, 그깟 죄책감과 후회가 무슨 소용이람. 나는 걱정과 질문들을 접어 가슴 한 켠에 묻어두었다.

적어도 우리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 마음들은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럴 시간에 나는 오롯이 너를 사랑하리라. 너의 삶에 오직 사랑만 주리라. 감히 그렇게 맹세했다. 그러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주변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아마 평생이 가도 그 준비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나와 이 이별은 아직 거리가 있어. 아직 이건 나의 것이 아니야 라며 나를 위로하는 것뿐이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영영 헤어지는 일에 어느 누가 어떻게 의연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준비한다고 하는 건, 그가 내가 없는 곳에서도 나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사랑을 미리 마련하기 위해서 아닐까? 남은 그 시간 동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또 다른, 어쩌면 더욱 큰 고비들을 넘길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당신은 지금 이별을 마주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혹은 그런 시기가 오게 된다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오롯이 사랑해주시길 바란다. 후회도, 죄책감도, 모든것을 다 뒤로 제쳐버리고 사랑만 하길 바란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한없이 사랑하길 바란다. 그러면 그 끝에는 오롯이 사랑만 있을 테니까. 그 사랑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이별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