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_생존보고서② ] SLOW 다 같이 천천히, 그다음은?

2020-05-06T15:51:58+00:002020. 04. 30.|

SLOW 다 같이 천천히, 그다음은?

글. 사진. 어효은(lovewill333@naver.com)


SLOW 다 같이 천천히, 어디로 가는 중이야? (사진출처 : 위키백과)

SLOW 다 같이 천천히, 어디로 가는 중이야? (사진출처 : 위키백과)

검색 창에 ‘불안 상담’을 치고 리뷰가 괜찮아 보이는 곳을 대충 찾아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빠른 시일 내로 상담 예약을 할 수 있을까요?”

빠르게 던진 물음에 상담 선생님은 당황한 기색 없이 대답했다.

“오늘은 어렵고요. 내일은 어떠세요?”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를 마치고 이불을 끌어올렸다.

3월, 불안과 무기력에 빠진 지 근 한 달이 되어갈 즈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어렵겠다 싶어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하루 한 끼만으로 허기를 채우는 날이 많아졌고 그나마도 시리얼을 챙겨 먹는 게 대부분이었다. 허기가 채워지면 다시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연극, 퍼포먼스, 글쓰기 등 다양한 예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작년 12월까지 청년예술단1 에 참가하여 단막극을 공연하고 백수로 지내고 있던 나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던 차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불어 닥친 재난상황에 모든 일정이 어그러졌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하던 글쓰기, 독소모임은 취소되었고 공연 연습도 할 수 없었으며 최후의 수단인 아르바이트마저 구하기 어려웠다. 방값도 한 달 치 밀린 상태였고 휴대폰 비도 내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예기치 못하게 들이닥친 재난상황이지만 뭐하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거대하고 시커먼 벽이 시간이 흐를수록 사방에서 옥죄여오는 것 같았다. ‘어떻게 먹고살지?’ 라는 물음에 답하기 막막했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조급했지만 무력감이란 늪에 빠져 하염없이 가라앉고만 있었다.

청년예술단 : 청년예술인이 직접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다양한 예술실험을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약 6개월간 활동비를 받으며 작업할 수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한다.

뉴스 기사를 보면 암담함이 밀려왔다. 혹시라도 내가 걸리면 어떡하지, 가족이나 동료가 걸리면? 온갖 관련 기사와 영상을 볼수록 걱정은 깊어져 갔다. 중국에서는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오면 산채로 화장을 시키고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구하지도 않고 방치한다는 제보가 올라왔다. 20대로 보이는 청년은 끝내 바이러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많은 꿈을 뒤로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심지어 의사까지 감염되어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날이 갈수록 확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것 같았고 사망자 수도 올라갔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덮쳐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마음에 검은 뿌리를 내리며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마음에 검은 뿌리를 내리며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코로나의 실체를 알면 알수록 불안감은 배가 됐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시키는 전염 증상은 두려움에 먹이를 주었다. 근육통, 목 아픔, 마른기침, 콧물, 열, 두통 등 다양한 형태로 증상이 나타났다. 더욱이 무증상 감염자 사례가 나오면서 검사를 통해 음성판정을 받기 전까지 불안 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마스크를 사러 약국에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목이 붓고 미열이 났다. 하루 종일 따듯한 물을 마시며 ‘설마 코로나는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장담할 수 없었기에 두려움에 떨었다. 우선 자가 격리를 시작했다. 병 자체의 지독함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 더욱 걱정됐다. 한순간에 민폐를 끼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질병으로 인한 고통보다 견디기 힘들게 느껴졌다. 다행히 며칠 후 증상이 호전되었고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지속되는 무기력과 불안으로 상담소를 찾았다.

지속되는 무기력과 불안으로 상담소를 찾았다.

상담은 1시간에 8만 원이었다. 부담되는 금액이었지만 그만큼 불안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 번의 상담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길 바랐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헉헉거리며 제대로 숨쉬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북받쳐왔다. 덮어놓고 지내왔던 기억들이 들춰졌기 때문일까. 불안과 무기력은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것만은 아니었다. 내면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지만 들으려 하지 않고 외면하며 살아온 묵은 상처들을 마주했다.

코로나에 걸릴까 봐 극도의 공포심과 불안을 느낀 것도 무기력에 빠진 것도 내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찾아온 마음의 그림자였다. 내가 정말 두려웠던 건,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고함소리에 아침마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쳐대던 어린 시절, 철저하게 외롭고 두렵고 불안했던 나의 모습, 그 모습을 지우려고 일부러 긍정적이고 밝은 척 살아온 나. 혼자 침잠하기 싫어 속으로 나를 둘러싼 환경과 타인을 멋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며 비겁하게 위안 삼았던 지난 날들. 그런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건물을 나오니 바람이 불어왔다. 눈은 조금 부었고 머리가 몽롱했다. 생일날 받았던 기프티콘 쿠폰으로 달콤한 케이크를 사 들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햇살이 길 곳곳을 비췄다. 창문을 살짝 여니 따듯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주하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정직한 눈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정직한 눈

상담 후 감정 일기 쓰기 미션을 받고 열흘간 꾸준히 작성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불안과 무기력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걱정이 시도 때도 없이 올라왔다. 자신을 깎아내리고 무시하고 한심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잦았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일 자체를 부담스럽고 귀찮은 것으로 생각했다. 남들이 이뤄놓은 것에 대해 과정은 보지 못하고 결과만 보며 부러워했다. 일이 잘 안되면 ‘내가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감정 일기를 쓰며 나를 돌아볼수록 피하고 싶은 미운 내 모습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뭔가 이뤄내지 못하면 가치 없는 존재처럼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끊임없는 성취의 굴레 속에서 나는 어땠나?’, ‘뭘 그렇게 열심히 해왔지? 무엇을 위해.’ 무엇을 쫓느라 내면이 병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달려왔던 걸까. 멈추고 나서야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나니 새로운 에너지가 차올랐다. 하나씩 다시 제대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작은 걸음이라도 차근차근 나아가보자고 스스로를 응원했다. 우선은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했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부끄럽지만 급한 대로 언니에게 방값을 빌렸다. 재난긴급생활지원비를 알아봤다. 재택알바를 찾아보았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블로그 홍보알바를 시작했다가 내 소중한 블로그가 혼수상태에 빠진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궁금한 분은 메일주시라. 하나씩 시도하니 자신감이 붙었다. 비록 크고 작은 넘어짐도 있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았다.

재난 문자를 확인하는 것 외에 코로나 관련된 기사는 당분간 찾아보지 않기로 했다.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어 갈 무렵 재난긴급생활지원 카드가 발급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들뜬 마음으로 한달음에 주민 센터로 향했다. 다이소에 가서 필요한 생활용품을 샀다. 마트에 가서 쌀과 반찬, 과일, 시리얼 등 먹고 싶은 것들을 장바구니 가득 담았다. 재난긴급생활지원비를 받아 든든했다. 사실 30만원이라는 금액은 부모님이나, 언니, 오빠에게 충분히 빌릴 수 있는 돈이었지만 직접 신청해서 받은 지원금이라 더 뿌듯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 5분이라도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하면할수록 마음이 편안해졌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여유가 생겼다. 바깥 활동을 하면서 뒷전이었던 방 청소를 하고 입지 않는 옷도 싹 정리했다. 산책하며 나무 벤치에 앉아서 새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가만히 앉아 숨을 들이마시면 흙과 나무 냄새가 몸 안에 은은하게 퍼진다. 마음이 온통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땐 막막하기만 했는데 여유가 생기니 살아가는 것이 한 결 가벼워졌다.

불쑥불쑥 불안과 무기력이 찾아오지만, 전처럼 깊게 빠지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진 행동이 결과적으로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동료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달라진 생각, 행동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래는 동료 K의 답변이다.

“모두와 불확실함을 공유하는 재난 사회는 이미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안도감을 주기도 해”-K-

“모두와 불확실함을 공유하는 재난 사회는 이미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안도감을 주기도 해”-K-

K : 마스크를 쓰고, 손을 좀 더 오래 자주 씻고, 휴대폰을 닦는 것 정도가 새로 생긴 습관이야. 모두와 불확실함을 공유하는 재난 사회는 이미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안도감을 주기도 해. 재난지원금과 청년수당을 신청하고,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각종 제도에 관심을 두고,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게 되더라고.

노동시간 1, 2위를 다퉈온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만큼 밀도 높은 경제활동이 이뤄져 왔잖아. 이번 재난 상황을 통해 노동시간은 줄이고 효율성은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생존에 대한 불안 없이 경제성으로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한 활동을 조직하고 실천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가면 좋겠어.

“누구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보편적인 지원사회 보장 시스템이 필요해.”

불확실함이 재편하는 세상을 살아갈수록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누구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보편적인 사회 보장 시스템이 필요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 일을 못 구하는 사람, 무급 휴직 중인 사람, 매출이 급감한 자영업자 등의 사람들이 지원금을 구걸하는 방식이 아닌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써 삶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동료 K는 아래의 글을 함께 공유했다.

우리가 시민을 얼굴이 있고 몸이 있는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면즉 자기 완결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언제나/이미 타인에 의해타인과 함께타인에 대해 비로소 개인인 존재타인에게 반드시 의존하고 끊임없이 연루되는 존재로서 시민을 사고할 수 있다면그런 시민은 이미 시민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며시민적 관계는 반드시 돌봄을 포함할 것이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중)

아래는 동료 J의 답변이다.

J :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 대학원을 가기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바깥 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어. 우울하고 무기력한 느낌이 자주 들었고 집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졌거든. 대학원 생활을 할 땐 바쁘게 움직였어. 집에 있는 게 무섭다는 말이 더 정확할 거야.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대부분의 강의가 온라인으로 바뀌었어. 상황을 보면서 대면 강의를 한다는 말에 무턱대고 일을 할 수도 없게 됐지. 다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어.

처음에는 예측할 수 없는 스케줄에 짜증이 나더라. 하면 하고 아니면 아니어야 나도 어떤 생활을 계획할 거 아니야.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침대에 누워 있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는 거야. 참 이상하다고 느꼈어. 무언가를 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다시 힘에 부쳐서 누워있게 되는 것이. 두려운 몇몇 밤들이 있었고, 결국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에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어.

“시장에서 반찬을 사고, 과일을 사고, 집 청소를 하는 등 소소한 일거리를 장기마라톤 하듯 이어가기 시작했어.”-J-

“시장에서 반찬을 사고, 과일을 사고, 집 청소를 하는 등 소소한 일거리를 장기마라톤 하듯 이어가기 시작했어.”-J-

그러다 시장에서 반찬을 사고, 과일을 사고, 집 청소를 하는 등 소소한 일거리를 장기 마라톤 하듯 이어가기 시작했어. 한날은 이런 거야말로 정말이지 일상을 사는 소중한 삶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하지만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에너지를 얻어왔던 나한테, 직접 대면하는 교류의 장이 줄어든다는 건 치명타이긴 해. 주에 한두 번 사람을 만나면서 그 힘으로 다시 혼자 한 주를 살아가고 있어.

아래는 동료, S의 답변이다.

S : 작년 계약직 일을 12월 말까지 마치고 1월부터는 쭉 쉬었어. 여행을 다닐 계획이었는데 코로나가 심각하게 퍼지면서 여행을 가지 못하고 집과 동네만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됐어. 예정된 모임이 취소되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읽기로 하고 놓아둔 책을 읽고 있어. 넷플릭스로 드라마, 영화를 보기도 해. 동네 산책을 하면서 주변과 친숙해졌어. 동네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어떤 길이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된 점은 좋더라고.

코로나19는 나에게 새로운 형태의 연결감을 알게 해줬어. 소소한 이웃과의 만남, 물건들을 마주하는 것, 특히 자연과의 교감. 자연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 인간의 욕심으로 망쳐놓은 자연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이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야. 코로나19로 인해 답답함과 고립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때로 가까운 자연 속에서 고요하게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어.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비슷한 상황에 공감이 갔다. 불확실한 사회에 대안이 될 돌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천천히 저마다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S의 이야기를 듣고 자연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했다.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들에게 건네는 말을 상상해서 적어본다. 아래는 N(nature)의 답변이다.

N : 너희들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난 이제 좀 숨통이 트여. 지금까지 우린 말을 하지 못했잖아. 언어가 다르니까. 그래도 지속적으로 통증을 호소해왔어. 너희는 너무 빨리 달리느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더라. 난 너무 아팠어. 괴롭고 슬펐어. 너무 무서웠어.

너희는 동물들에게도 참 함부로 대하더라. 세균이 득실거리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좁은 공간에 가둬두고 질병에 걸린 돼지와 닭들을 쓰레기처럼 취급하며 닥치는 대로 땅 구덩이 속으로 내던졌어. 동물들의 공포와 비명소리를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 나는 알고 있어. 이제는 동물들과 우리를 생각해줘. 부탁할게. 건강하게 같이 살아가려면 우리가 보내는 메시지를 읽어줘.

건강한 자연, 건강한 인간,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건강한 자연, 건강한 인간,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나를 포함한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자연은 매 순간 고통 받고 있었다. 자연이 병들고 아프면 함께 사는 생명도 병들고 아픈 것이 당연하다. 인도 정부 자가 격리 시행 첫날 뉴델리의 대기오염은 44%가 줄고 인도 전역의 대기 질이 80% 좋아졌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항구도시 마르델플라타에서 바다사자가 떼 지어 육지로 올라와 길에서 휴식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인적이 뜸해진 곳에 동물들이 나타난 것이다. 유람선 운항이 중단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운하에는 물고기 떼가 돌아왔다. 인간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인 코로나가 자연에게 치유의 기회가 되고 있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욕심을 내려놓는다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자연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루를 더 가지려는 욕심 없이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십계명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그 어머니를 잘 보살피고 나무와 동물과 새들당신의 모든 친척들을 존중하라.

모든 생명은 신성한 것모든 존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대지로부터 오직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그 이상은 그냥 놓아두어라.”

문명의 발달을 위해 경쟁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가 자연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삶보다 나은 것 하나 없다. 오히려 배워야 하지 않을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느려지면서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씩 그 방향이 선명해지고 있다. 수없이 넘어지는 과정에서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일어난다. 재난 속에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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