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자 인터뷰] 창작집단 ‘소풍 가는 길’ 대표 정희영님을 만나다


연극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글.사진 이희진(hjl821@naver.com)

항상 궁금했다. 무엇이 사람을 예술로 이끄는지.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기에, 더 어려운 길을 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도봉구를 찾아갔다. 그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예술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도 화창했다.

반디극장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창작집단 ‘소풍 가는 길’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정희영입니다. 저희 단체는 예술을 통해서 일상을 설렘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배우들로 이루어진 단체이지만, 주민들도 연극에 참여하는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단체를 설립한 지는 4년 정도 되었고, 3년 정도는 도봉구의 여러 공간에서 활동하다가 작년 5월에 반디극장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왜 도봉구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도봉구가 저희 삶의 터전이라서 그렇습니다. 대학로에서 같이 극단을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우연히 둘 다 도봉구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살고 있는 곳에서도 이러한 극단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친구와 합심하여 도봉구에서 자리잡고 예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도봉구뿐만 아니라 대학로에서도 활동 중입니다.

 

Q. 대학로 활동과 도봉구 활동의 차이점이 있다면?

A.많은 분들이 물어 보시는 부분입니다. 대학로에서의 공연은 배우와 여러 스태프들이 합을 맞춰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을에서 하는 공연은 주민들과 함께 만드는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희 극장에서 연극을 할 때 찾아와 주신 관객 분들이 연극에 참여하여 극을 완성하기 때문에, ‘한번 보러 오는 것’에서 연극이 끝나지 않습니다.

반디극장

Q. 극단에서 활동하신 내역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올해에는 예술교육 분야에 집중하여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과 같은 경우에는 도봉구와 관련되어 있는 소재로 연극을 진행하였습니다. 둘리, 함석헌 선생님, 그리고 간송 전형필 선생님에 대한 극을 올렸는데, 그중 간송 전형필 선생님에 대한 연극을 준비하면서 ‘지켜야 할 문화’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Q. 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A.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원리를 밝힌 책인 해례본을 수집하여 보존하신 분입니다. 수집한 물품들을 기증하시고, 6.25전쟁이 끝나고는 국어학자분들을 불러 모아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셨는데요. 최근에 이슈되고 있는 상주본 사태와 비교한다면 전형필 선생님의 문화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전형필 선생님의 이야기를 쫓아가면서 문화에 대한 정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이 일제에 의해 왜곡된 상태로 존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선생님의 노력 덕택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킬 수 있었고 또 이를 연구하여 진짜의 의미를 잊지 않고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상주본 사태: 훈민정음 상주본을 가지고 있는 배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천억원의 금액을 요구한 사건

 

Q. 이러한 이야기를 주민들에게 전하려 하셨던 이유가 있다면?

A.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생가가 이 근처에 있어서, 연극을 보신 후 생가에 방문하신 주민 분들이 더 생생하게 현장을 체험하게 하고자 이러한 연극을 구성하였습니다. 연극을 통해서 옛이야기를 현재로 끌고 나오는 것이 삶을더 활기를 넘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예술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옛이야기에 관심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죠. 저는 막연한 것들보다는 이러한 서사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힘이 사람들의 내적 소통의 기제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Q. 그럼 이 극장에서 주민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으신가요?

A.‘예술 자체가 멀리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가까운 공간에서도 예술을 즐기고 체험할 수 있도록 주민 분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반디극장 정희영 대표님

Q.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A:저는 시골 출신입니다. 유치원도 없었던 동네에서 살았고 학교에 가는데 1시간 이상 걸어서 다녔어야 했는데요. 이후에 부모님이 도시로 이사 가자고 하셔서 도시로 갔는데 낯가림이 심해서 고생을 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공책에 연극 비슷한 것을 끼적거리게 되었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대사’를 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연극을 통해서 다른 인물로 변하고 싶었던 거죠. 이후 중고등학교 때 연극부 활동을 꾸준히 했고요. 대학은 국문과에 들어갔지만 대학 때에도 연극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Q. 그럼 어쩌다가 연극계에 발을 들이시게 되신건가요?

A:졸업 후 임용고시를 준비하긴 했지만 항상 마음은 연극 쪽에 쏠려 있었습니다. 항상 짬을 내서 연극을 보러 다녔거든요. 그때에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서 표를 구하고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비용을 충당했습니다. 라디오에서 홍보하는 공연은 보통 상업극이 많아서 자주 보다 보니 조금 실망을 하게 되더라구요. 이후에는 작품성 있는 연극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선망의 작품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연극계에 발을 들였던 것 같습니다.

 

Q. 그럼 현재는 배우와 연극기획 어느 부분에 집중하고 계시나요?

A:대학로 쪽에서는 배우 활동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도봉구에서는 연극기획을 하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먹을수록 대본 선택의 폭이 좁아지다 보니 제가 스스로 연기할 수 있는 대본을 써보고자 해요. 확실히 나이가 먹으면서 여자 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배역이 갈수록 줄어들더라구요.

 

Q. 극단을 꾸리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A.예산 문제가 가장 어렵습니다. 예산을 따오지 않으면 연극을 올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요. 올해 공연을 진행하지 못했던 것도 예산문제가 컸습니다. 작품성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관객 측에 표를 팔아서 연극기획비용이 충당되지 않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저희 같은 소규모 극단 같은 경우 공연 예산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방향을 조금 틀어서 예술 교육을 통해서 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교육 역시 연극을 기반으로 하여 글쓰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Q. 추후에 극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A.뭘 다룰지는 그때의 상황에 따라 항상 변하겠죠. 하지만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또 예술가라고 잘난 척하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정수를 쉽게 전달했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연극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본인이 관련 사안을 찾아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지금은 1930년대 작가인 강경애 작가님이 쓰신 ‘원고료 200원’이라는 작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공연할 예정인데,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