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자 인터뷰] ‘왜’를 묻는 문화예술 기획자


(사)서울산책 서정현 기획자

글/ 김재이 (riot112@naver.com)
사진/ 배지연 (804390@gmail.com)

‘커다란 존재인 행성에 비해 그 주위를 돌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위성’
내가 하고 싶은 것의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지 주변에 맴도는 것이 괜찮은지 되물어봐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이었다.
공연의 위성인 서정현 기획자를 만나보았다.

서정현 기획자님

서정현 기획자님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서울산책에서 문화예술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서정현입니다. 공연부터 여러 지역사업까지 문화예술과 관련된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프로듀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회사 내 직급은 팀장이고, 2년 반 정도 일했습니다. 외부에 노출되는 경력은 20살 때부터 띄엄띄엄 하고 있어서 약 10년 정도로 얘기합니다.

 

Q. 직무를 소개해주세요.

서울산책에서 하는 일은 일종의 도시기획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문화기획에서 한걸음 들어가서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 도시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기획하고, 꾸며서 실행해보는 일입니다. 서울산책의 경우는 1인 1PM 형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각자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팀을 꾸려 진행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PM(Project Manager)_프로젝트의 책임자

 

Q. 서울산책과 함께 일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일종의 스카우트죠. (웃음)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이 일을 하고 계시는 지인이 업무역량이 있는 사람을 요구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Q.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실은 처음엔 공대였어요. 생각을 해보니 제가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죠. 저는 원래 음악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음악은 전공자가 잘할 테니 그 주변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공연기획자 혹은 비슷한 것이면 좋겠다, 그럼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20대 초반에 음향회사에 들어갔어요. 1년 정도 막내 생활을 하면서 주변 추천으로 홍대 프린지 페스티벌이라는 축제에 자원 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그해 겨울 스텝으로 일하면서 발을 들이기 시작했어요.
군대를 다녀오고 중퇴였던 상황에서 학생이라는 영역 내에서 관련된 일을 자유롭게 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을 전공했어요. 학교에 다니면서 프리랜서로 기획을 계속했고 자연스럽게 저의 전문분야가 되었죠.

북카페처럼 꾸며진 사무실 내부

북카페처럼 꾸며진 사무실 내부

Q. 공연기획자는 무슨 일을 하나요?

공연기획자 안에서도 장르에 따라 업무가 달라요. 문화예술 축제가 있을 수도 있고, 지역축제가 있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한강 몽땅 페스티벌’의 메인 기획자는 오거나이징이 주 업무예요. 각각의 작은 페스티벌들을 묶어주고 공간 지원을 해주는 개념이거든요. 이런 일 비슷하게 아울러서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고 있으면 문화기획자인 거고, 그중에서 조금 더 공공적 영역에서 고민하고 있으면 도시기획자인 거고. (웃음)
뚜렷하진 않은데 업무에 따라 진짜 달라요. 업무 파악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오거나이징(Organizing)_조직화

 

Q. 그렇다면 이 전엔 무슨 일을 하고 계셨나요?

계속 프리랜서로 연극이나 이런 기획 일을 했어요. 학교를 졸업할 땐 뜻을 같이했던 친구와 소셜벤처도 차렸었고, 공연이나 행사 기획은 아니지만, 지인을 통해 애플리케이션 기획 일도 1년 정도 했어요. 기획자와 관련된 일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대부분 UX와 관련된 일이거든요. 결국은 사용자가 어디서 만나서 어떻게 오게 만드느냐에 대한 고민인데, 그런 일을 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UX(User Experience)_지각 가능한 모든 면에서 사용자가 참여하고 상호 교감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다양한 경험들

 

Q. 특성상 야근이 많을 것 같아요.

만약에 잠을 못 자고 해야 하는 일이면 교대로 자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죠. 업무 성격을 따지자면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시기는 바쁠 일이 없어요.
대표님은 ‘주4일 근무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다니자’고 얘기하세요. 물론 지켜지지는 않지만 바쁘지 않은 이상 10to6를 지켜요.

 

Q. 일의 강도는 프로젝트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크겠어요. 프로젝트는 어떤 식으로 찾으러 다니시나요?

그렇죠. 그런데 여유로우면 대표님한테 혼나죠. 계속 먹을거리를 찾아다녀야지. (웃음)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일은 대부분 대표님이 하세요. 저희는 아이템들을 많이 공유하는 편이에요. 시작은 아이디어인데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제일 중요한 것은 ‘왜’라고 생각해요. 멍때리기 대회를 한다든지, 그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왜’가 있으니까 발생하는 거예요. ‘왜’만 있으면 아이디어는 계속 샘솟는 게 기획자라고 생각하거든요.

 

Q. 그 라는 것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나요? 가만히 생각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결국은 나한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했을 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벌일 수 있는 일들에 전문적인 것들이 붙으면 세련되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각자 하고 싶은 코어들은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런데 재질문은 던져봐야 해요. 내가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지, 주변에 맴도는 게 괜찮은 건지를 물어봐야 해요. 저는 기획자는 실행자, 아이디어 메이커, 카피라이터, 홍보담당자 등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모든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모르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걸 그냥 지나치면 안 돼요. 물어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두기도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나중에 선택할 때 도움이 되거든요.

 

Q. ‘가 정말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가장 뿌듯했던 가 있나요?

작년에 여의 아이스파크. 여의도 스케이트장을 운영했어요. 가격 정책부터 공원의 동선 등 규정이 많았는데 ‘왜’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1년 내내 미세먼지라던가 여러 이유로 밖에 나갈 일이 적어지잖아요. 수익이 아니라 서울 시민들이 ‘겨울에 밖에서 재밌게 놀 수 있는 일들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사명이 있었어요. 저는 한두 달 남짓 동안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재미있어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애들이 너무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피드백들이 저의 ‘왜’를 충족하고, 이 스케이트 운영이 저의 ‘공연’인 거예요. ‘직원도 친절했고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다.’ 이런 게 너무 좋아요. 기초 공사가 3주나 걸리고 일을 진두지휘하는데 그러면서도 ‘왜’를 놓칠 수 없는 이유는 ‘사람들이 오면 너무 재밌겠구나.’ 그런 ‘왜’가 충족되는 것.

여의아이스파크

여의도공원 내 문화의 마당에 설치된 스케이트장 (여의아이스파크 제공)

Q. 11프로젝트면 완전 신입은 잘 뽑지 않으시겠네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근 1~2년 사이에 조직체계가 많이 바뀐 편이라서 지금은 조직이 다이어트 상태예요. (웃음) (현재는 너무 많이 빠져서)팀원은 당연히 필요한 거예요. 저희가 마냥 행사만 하는 게 아니라서 지역조사 같은 일이 매우 많거든요. 지금은 1인이 모든 영역을 다 하고 있어요. 우리는 직원이 필요해요. (웃음)

 

Q. 그렇다면 신입은 보통 무슨 일을 하나요?

별반 다르지 않아요. 브레인스토밍은 동등하게 같이 해요. 기조는 PM이 잡고 가지만 자료 조사나 실무는 나눠서 해요. 이 정도의 영역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내가 총괄할 수도 있고, 파트너십으로 함께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신입에게 필요한 역량은 (기획하는 주제에 연관된 여러 분야 등)관심이 많고 메모를 잘해서 빠진 게 없어야 해요.

 

Q. 이 일을 할 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요?

제가 무언가 하고 있어서 정신이 없으면 ‘이건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면 ‘이쪽은 제가 맡아서 할게요.’ 이런 눈치도 약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도움이 되고 저 역시도 이 친구가 PM을 하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거든요.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바도 되게 넓어졌어요. 애플리케이션 개발이나 홈페이지 등을 요구해요. 이게 얼마나 노력이 드는 일이고 얼마나 핵심적인 사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를 해줘야 하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여러 정보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지하게 답변해주시는 기획자님

진지하게 답변해주시는 기획자님

Q. 그럼 말주변이 없는 사람은 조금 힘들지 않을까요?

단언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많을 테니까요. 말주변이 없어도 딱 중심만 얘기하고 나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강력하게 어필되죠. 한편으로는 경험들이 많아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 안에 꿰는 이야기들이 나오면 전달될 수도 있어요. 모든 기획자가 다 설득하러 다니지는 않아요. 기획을 따오는 기획자가 있고, 잘 수행하는 기획자가 있고, 기획자의 업무역량 안에서 나의 크루들을 잘 돌려야 되는 기획자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사람들이 잘 뭉쳐있으면 되게 좋은 거죠.

 

Q. 즉각적인 피드백이 오는 데 좋지 않은 피드백이 오는 경우도 있겠어요. 그럴 때 정신적인 충격이 매우 클 것 같아요.

많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요.

‘왜?’

기획자는 무릎이 닳아야 해요. (웃음) 거꾸로 얘기하면 나의 자존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를 생각하고 있으면 일에 대해서 모든 책임을 질 수 있고, 피드백은 나의 감정적인 부분을 흩트려 놓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요.
기획자는 방향과 종류가 많아요. 사무실에서 오거나이징을 하면서 자료를 정리하고 배포하는 역할이 맞는 사람이 있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게 맞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맞지 않는 일을 했을 경우에 상처들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맞지 않아서 생긴 일이니까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이 일을 시작할 때 ‘왜’가 분명했던 사람들이라면 다른 일은 뭐든 하거든요.

 

Q. 소신이 있는 사람들이 이 일에 적합하겠네요.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무슨 소신일까 생각해보면 그냥 무언가 만들어서 일이 벌어지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게 소신인 것 같아요.

 

Q. 이 일이 힘드실 때도 있는데 그런데도 다른 누군가 한다면 추천을 해주고 싶은가요?

추천을 섣불리 하기에 앞서 많이 만나보고 얘기해봤을 때 ‘기획자를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했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꿈을 꾸고 있다면 아까 얘기한 역량들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그럼 추천은 언제든 할 수 있어요.
기획 일은 길어도 7~8개월 안에 답이 나와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든 뒷걸음치든지 계속 활동하는 일이라서 활동량이 많은 사람한테 추천하긴 해요.

 

Q. 최근엔 프로젝트에 대한 어떤 고민이 있나요?

‘어떻게 하면 잘 놀까?’ 고민하고 있어요. ‘기획자 뭘 가르치려 들면 되게 위험한데.’ 이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기획자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사용자 기반의 좋은 축제를 어떻게 만들어낼까?’ 요즘 들어 매년 갈 수 있는 프로젝트를 꾸려보는 게 고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