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자 인터뷰] 우리 모두가 각자 삶의 무대의 주역


우리 모두가 각자 삶의 무대의 주역: 프리랜서 무용수 이산하님.

글/ 이재희 (bookbug0529@gmail.com)
사진/ 고다은 (goda2016@naver.com)
사진 제공/ 박귀섭

주역이 되는 길은 무엇일까요? 타고 나는 것? 쟁취하는 것? 선택받는 것?
여기 좀 더 현명한 답을 찾아 나선 분이 있습니다.
반복과 연결을 통해, 발레처럼 아름다운 자신만의 삶의 곡선을 그려나가고 있는 프리랜서 무용수 이산하님을 만났습니다.

프리랜서 무용수 이산하 님

프리랜서 무용수 이산하 님

Q. 안녕하세요, 청년내일취재단 기자 이재희입니다.
A. 안녕하세요, 현재 프리랜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이산하입니다.

Q. 이전엔 발레단에 속한 단원으로서, 또 현재는 프리랜서 무용수로서 활동하고 계세요. 이산하 님을 소개할 때 발레는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일 것 같습니다.
A. 전 그동안 학교나 무용단에서 발레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발레를 해 왔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발레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스물일곱부터 무용수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서, 발레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어요. 여러 사정으로 은퇴가 번복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발레를 보다 편안하게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예술가로서 다양한 표현을 찾아 나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베이스인 발레를 토대로,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태예요.

# 발레단원으로서의 삶

Q. 무용은 정말 장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걸 견뎌내는 이산하 님만의 비법이 있을까요?
A. 지금도 학생들을 보면 제가 어떻게 버텼나 싶어요. 아침엔 학과 수업 듣고, 끝나면 연습, 심지어 방과 후엔 학원에 갔을 만큼 하루에 움직이는 양이 많았어요. 주말 하루도 실기를 쉬는 날이 없었고요. 비법이라기보다는, 당시엔 예중, 예고 혹은 예술계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면 당연히 다 그렇게 한다고 여겼어요. 그 덕에 그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발레계 안에서는 몸에 관한 기준이 일반 사회의 기준보다 가혹한 편이에요. 사실 어리고 건강한 학생이라면 먹고 싶은 것이 많은 게 당연하고, 몸이 극단적으로 마르는 것이 이상하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20대 중반 이후로는 이를 그저 몸매 관리라는 차원에서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오히려 독하게 애썼던 부분이라고 한다면 체력을 쌓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것이에요. 발레리나의 몸은 발레라는 예술을 표현하는 도구이기에, 몸매와 체력 관리는 프로가 갖춰야 할 기본이자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발레에 대한 제 경외감의 반영이기도 해요. 결국 이 노력을 서서히 제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Q.국립발레단 그리고 유니버설발레단, 어떻게 보면 무용수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오셨는데, 그 길에 대해서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A. 사실 예체능에 도전하는 학생들이라면 흔히 공감할 수 있는 막막함이 있어요. 제때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올바른 조언을 듣기 힘들거든요. 우선 주변에 예체능을 하는 학생들이 흔치 않고, 학원 등 주변의 말을 모두 신뢰하기도 어려우니까요. 그런 점에서, 제가 발레 무용수로서의 길로 들어온 것에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운동 삼아 발레를 시작했어요. 2학년이 됐을 무렵, 다니던 발레 학원으로부터 콩쿠르 등의 대회를 준비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신중하고 냉철하게 딸인 저에게 재능이 있는지를 확인하셨어요. 이 업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국립 발레단 등 세 군데를 찾아가 긍정적인 의견을 듣고, 괜찮은 교육기관을 추천받았어요.
이후 한예종 예비학교를 비롯해 예원학교 등으로까지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발레 무용수로서의 길을 걷는 데 어머니의 현명한 선택이 크게 작용했어요.

Q. 예술 분야의 조직문화가 상당히 수직적이고 경직된 문화라고 들었는데요. 그런 엄격한 조직문화를 견디는 것이 힘들진 않으셨는지.
A. 사실 조직문화도 조직문화지만, 저의 내적 갈등 때문에 조직 문화가 더욱 힘들게 다가왔던 것도 있었습니다. 유니버설 발레단 때는 분위기는 비교적 부드러운 편이었지만 당시 저의 어린 치기, 높은 이상 때문에 역할에 대한 불만, 무대에 대한 갈증을 느껴야 했어요. 그런 요인들이 절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당시의 저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객관적인 시선보다 훨씬 높았었다고 생각해요.

#새롭게 쓰는 ‘주역(主役)’의 의미

Q. 발레단의 단원으로서 활동하시며 여러 어려움에도 발레와 솔리스트의 꿈을 오래 추구하셨던 만큼, 그리고 지금 여러 무대 위에서 다양한 주역을 소화하고 계신 만큼, ‘주역’에 대한 의미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A. 작품 속 주역이라는 하나의 의미에서 벗어나서, 저는 제가 여러 무대에서 주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무용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음식이 앞에 놓인 자리에서 제가 그것을 먹든 먹지 않든 비슷한 반응이 돌아와요. ‘발레 하시는데 이런 음식을 드셔도 되나요?’ 혹은 ‘발레 하시느라 이런 음식은 못 드시겠네요.’ 등의 다소 부담스러운 반응들이죠.
그건 발레 무용수에게 짐 지워지는 고정된 시선이에요. 하지만 전 무용수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 전 현재 무용수인 동시에, 다른 곳에선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여러 곳에서 각기 다른 주역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집니다. 그렇게 제 생각이 변화하던 모습이 국립 발레단에서 2015년 9월에 진행했던 작품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있었어요.

무대 위의 이산하 님. (사진: 박귀섭님 촬영)

무대 위의 이산하 님. (사진: 박귀섭님 촬영)

Q. 말씀하신 대로 국립발레단에서 2015년 9월에 진행했던 <KNB Movement Series 1 국립발레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속에서 이산하님의 생각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현재 선택과 결정의 기로 앞에 놓인 청년들이 많습니다. 청년의 입장에서는 이산하 님이 멘토처럼 다가올 것 같습니다. 처음에 낯설지만 새로운 선택, 새로운 시작에 대해서 이산하님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그 작품의 내용은 제가 바로 그 상태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을 띄었어요. 사계절이 같은 패턴으로 돌며 반복되는 것처럼 제 삶도 그렇게 바라보게 된 거예요. 사실 요즘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죠. 평생직장, 평생 직업을 갖기보단 여러 직업을 거치는 경우가 많아졌으니까요. 특히 저는 한 직업을 시작하고 끝맺는 그 과정이 비교적 일찍 시작해 일찍, 그것도 이번에 처음 끝맺음한 경우에요. 그 후 사슬을 반복해 연결하는 것처럼 다음 일을 이어가고 있어요.
같은 패턴이 반복되겠지만, 저는 지금도, 앞으로도 경험 속에서 좋았던 것들은 취하고 부족했던 것들은 두고 가는 과정을 겪고 있고 겪을 거예요. 이렇게 직업이라는 사슬을 이을수록 삶의 과제를 대하는 태도가 좀 더 능숙해질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계속 5 – 10년 정도의 주기를 반복하며 제 삶을 연결해 갈 예정입니다.

#모두가 주역이 되는 ‘2교시’

Q. 직장인 취미 공유 네트워크인 ‘2교시’를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개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게도 느껴지는 콘텐츠예요.
A. ‘2교시’는 일종의 비유예요. 따분하고 수동적인 직장생활이 1교시라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쾌한 시간이 바로 “2교시”예요. 이 자리에서 마음이 맞는 분들이 함께 모여 취미생활뿐 아니라 자기계발, 재테크 등 많은 콘텐츠를 공유하고 있어요. 또한 2교시 모임들은 단발성 모임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 커뮤니티 형성을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텃세 없는 모임, 신입도 어렵지 않게 어울릴 수 있는 모임을 추구하고요.
현재 18년도 3학기 모임을 모집 중인데, 총 마흔두 개의 모임에서 모임원을 모집 중이에요. 요리를 배워볼 수도 있고, 와인이나 증류주 등 술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모임도 있어요. 또, 테니스나 복싱, 몸매 관리와 볼링 등을 함께 배우는 운동모임도 있고요. 독서와 맥주를 곁들이는 ‘책맥’ 모임처럼 신선한 콘셉트의 모임도 있습니다.

Q. 뜻대로 하기 힘들고 주인공으로 선택되기 힘든 1교시 직장생활 이후, 주체적인 활동을 꾸려 모두가 주인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2교시라고 표현하신 거군요.
A. 사실 ‘2교시’에는 살짝 숨겨둔 메시지가 있어요. 실은 2교시 활동에서 저는 삶의 터닝포인트를 찾았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활동이 터닝포인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임 원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그 장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2교시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해서 그것을 공유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 프리랜서 무용수로서의 삶

Q. 현재 프리랜서 무용수이자 발레 선생님, 그리고 필라테스 지도자, 또 직장인 취미 공유 네트워크의 무용부장까지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하고 계세요. 전체적인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A. 프리랜서로 일하며 가장 좋은 점은 시간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돈이라는 게 다른 분들에게도 그렇듯 어느 정도 일정이 고정되어 있어야 모이더라고요. 그래서 큰 틀에서 일과를 정해두고 생활하고 있어요.
오전 시간과 저녁 시간에 고정적으로 수업을 하고, 비어 있는 오후 1시부터 6-7시까지는 공연이 잡혔을 때 연습을 하거나, 제가 필요한 레슨을 받는 등의 자기 계발 시간으로 쓰고 있어요. 그래서 제 일과와 맞지 않는 레슨과 공연은 잡지 않는 방향으로, 큰 틀에서 일과를 고정적으로 꾸려가고 있어요. 다만 2교시 활동을 하면서 매일 기존의 일과를 고정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대신, 아예 요일별 일과를 다시 잡았어요. 그런 부분이 프리랜서로서 가질 수 있는 자유로움이죠. 자유롭지만 저만의 규칙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어요.

2교시에서 활동하는 모습 (사진: 2교시 제공)

2교시에서 활동하는 모습 (사진: 2교시 제공)

Q. 시간적 조건 외에, 무용수로서 어떤 작품을 공연하실지 선택하시는 기준이 있을까요?
A. 공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예전과는 달리 기술적인 부분이 가장 강조되는 공연보다는 무용수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더욱 성숙할 수 있는 공연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준비하는 연습 과정에서 보다 발전된 표현 방법을 연구하고자 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기획자로 새로운 진로에 도전하는 친구들의 공연이나 다른 장르에 계신 분과 협업하는 공연에 출연하기도 해요.

Q. 무용의 기술적인 표현 자체에 국한하지 않고, 효과적인 표현이라는 큰 틀을 추구하고 계신 것이군요.
A. 현재 저는 무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저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여러 가지 배워가면서 정보를 습득하고 있는 단계예요. 향후에 해야 할 일에 대한 진로탐색을 하는 단계인 거예요.

Q. 그렇다면 진로탐색 단계인 현재, 설정해 두신 미래 계획이 있으신가요?
A.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무대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무대에 서고 싶어요. 신체의 운동성에 치중되는 장르를 넘어 다른 결의 표현방식을 익혀보고 싶습니다. 더불어 지금은 발레단 밖의 또 다른 사회생활에 적응하며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 능력 등 그동안 제게 생소했던 영역의 능력을 체험해 나가고 있어요. 이건 ‘2교시’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넓혀나가고 있는 영역입니다.

차분하게 답변 중이신 모습

차분하게 답변 중이신 모습

Q.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지금은 계속 시작하고 있는 단계라는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낯선 능력이 필요한 자리들이 처음엔 낯설고 어려우셨을 것 같습니다.
A. 네. 하지만 발레를 통해 얻은 큰 경험이 하나 있어요. 발레는 사실 타고난 재능으로만 하는 운동 분야라기보다는 반복과 연결을 거듭하는 과정으로 완성에 가까워지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될 때까지 하나의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익힌 동작들을 연결하는 거예요.
이렇게 무용을 하는 과정을 통해, 저는 눈앞에 놓인 과제라면 어떻게든 차근차근 이루어내는 자세를 배웠어요. 그래서 처음 해 본 일은 당연히 안 될 수 있다고 너그럽게 바라봐요. 기간을 넉넉히 잡고 꾸준히 노력하면 성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반복과 연결을 통해 삶의 과제들을 해결하고 이어나가는 것은 제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어요.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무용수의 몸과 움직임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산하 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니, 무용수의 모습을 만드는 것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단단한 돌을 쪼개는 조각가의 작업에 더욱 가까웠습니다. 그녀에게 반복과 연결은 무용수로서 무용을 하기 위한 과정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전반적인 삶의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보였습니다. 반복과 연결을 통해 나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무대에서 스스로 ‘주역’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본 기사는 현직자로 구성된 멘토링 모임 ‘굿브라더’의 멤버를 인터뷰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