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자 인터뷰]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쌓아가는 영화배우의 길: 배우 윤진을 만나다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쌓아가는 영화배우의 길: 배우 윤진을 만나다

글. 사진 조기현(ruaendrlgus@naver.com)

6년 전쯤이다. 그때 나는 단편영화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한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읽어보더니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막내’라는 역할에 딱 맞는 배우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배우 윤진님을 소개받았다. 보자마자 경상도 사투리, 몸짓, 표정 등을 보고 막내 역에 제격이라는 생각을 했고 우리는 곧바로 작업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함께 단편영화를 찍었다. 나는 그 이후 영화를 찍지 않았지만 배우 윤진님은 꾸준히 영화를 계속했다. 다양한 연기 경력을 통해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는 모습이었고 1, 2년에 한 번씩 보게 될 때마다 단단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묻고 싶었다. 유명연예인이 아니라 아래서부터 쌓아 올라가는 배우의 길에 대해서 말이다.


△인터뷰 중인 윤진님의 모습

△인터뷰 중인 윤진님의 모습

Q.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안녕하세요. 저는 윤진입니다. 나이는 33살이고 직업은 영화인입니다. 연기도 하고, 제작, 연출도 했어요. 꿈은 한류스타에요.(웃음)

 

Q.배우를 하게 된 계기 좀 들려주세요.

A.군 전역했을 때에요. 추석에 벌초하러 가족들 다 같이 가는데 고모가 이제 무얼 할 거냐고 묻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사람들을 웃기고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해서 개그맨을 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고모가 나이도 있는 애가 연예인 되려고 한다고 나무라셨어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웃음) 오기로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죠. 그게 시작이에요.
학교 다니면서 우연히 장편영화에 출연하게 되었어요. 근데 그 영화가 영화제에 간 거예요. 스텝, 배우, 관계자들 모여서 회식을 하는데 감독님이 사람들한테 저를 배우라고 소개를 해주시더라고요. 막상 배우라고 들으니까 굉장히 부담됐어요. 그러면서도 뭔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게 연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영화 현장에도 열심히 나간 계기가 된 거 같아요.

 

Q.고모와 감독님의 말이 큰 역할을 했네요.(웃음) 지금까지 작품은 얼마나 하셨나요?

A.8년째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을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스무 작품 정도 한 거 같아요. 지금은 대구 TBC에서 하는 <건강클리닉>이라는 방송에 매주 출연하고 있어요.

 

Q.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좀 알려주세요.

A.2014년에 강원 감독님과 작업한 단편영화 <잭 보이>가 생각나요. 꽉 막힌 도로가 배경인 영화였어요. 규모도 좀 있었고, 제가 비중 있게 출연한 영화가 영화제가 간 것도 처음이었어요. 현장에서 감독님에게 좋은 코멘트도 많이 받았어요. 저에게 좋은 자양분이 됐죠.

△ 촬영 당시 모습, 왼쪽에서 두 번째 윤진님(제공: 윤진)

△<잭 보이> 촬영 당시 모습, 왼쪽에서 두 번째 윤진님(제공: 윤진)

Q.현재 작업 중이던 작품이 그저께 촬영이 끝났다고 들었어요. 어떤 작품과 역할이었나요?

A.<숫호구>,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연출한 백승기 감독님의 <오늘도 평화로운>이라는 신작이었어요. 자칭 C급 코미디 영화를 찍으시는데 현장도 편하고, 하면서 많이 웃었어요. 제가 맡은 역할은 만신 사제라는 역할이에요. 신앙이 투철한 신부님인데 신학 공부 열심히 하다가 난데없이 신내림을 받은 거예요.(웃음) 그래서 캐릭터 이름이 ‘만신’, ‘사제’가 된 거예요.


 

Q.작업이 있을 때는 어떤 일상을 보내나요?

A.작업 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래서 불면증이 심해요. 대본을 받아들고 카메라 앞에 설 때까지 연기할 인물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계속 고민하는 거죠. 최근에 <밀실>이라는 작품에서 발달장애인 역할을 맡았어요. 모든 역할을 처음으로 하지만, 발달장애인 연기는 특히나 조심하게 돼요. 혹시라도 장애인분들에게 실례가 될까 싶어서요. 그 역할의 행동지문은 몇 줄 안 되지만 거기서 인물의 삶을 유추하는 과정에 공을 많이 들여요. 카메라 앞에 설 때까지, 확신이 들 때까지. 스트레스가 심한데 그게 또 에너지이기도 해요. 아, 그리고 요즘은 두 번째로 연출할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Q.맞다! 최근에 단편영화도 연출하셨죠? 연출하시게 된 이유 좀 들려주세요.

A.제목은 <옥상만은 내 땅>이에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배우로서 주인공을 해보고 싶었지요. 이전에 연출은 안 해봤어도 제작부는 여러 번 해봤어요. 그래서 현장 돌아가는 걸 좀 알았어요. 영화는 잘 나왔어요. 아직 사운드 믹싱이 끝나지 않았지만, 세계영화제를 돌고 있어요. 명작인 게 분명해요.(웃음) 촬영 당시 운 좋게 얻어걸린 장면들이 있는데 아주 좋아요. 이를테면 촬영하던 방 안에 사마귀가 들어와 있다거나, 촬영 중에 공사장 소리가 들리는 건 준비된 게 아니었거든요. 그런 장면들이 영화를 살리기도 했어요.

 

Q.영화제는 어디 어디 갔나요?

A.아직도 심사가 진행 중인데요. 미국, 아르헨티나, 멕시코, 벨라루스, 인도 등에 있는 영화제들에서 연락이 왔어요.

△윤진님의 연출작 시사회 당시 포스터(제공 윤진)

△윤진님의 연출작 <옥상만은 내 땅> 시사회 당시 포스터(제공 윤진)

Q.연기하다가 연출하는 건 좀 다른 경험이었을 거 같아요.

A.중국에서는 연출가를 도연(导演)이라고 불러요. 이끌 도에 펼 연이니까 연기를 이끈다는 말이죠. 저는 이 말이 연출과 연기를 같은 선상에서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연출가는 이끌고 배우는 표현하는 거예요. 이건 위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과는 다르죠. 그런 의미에서 연출가와 배우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또 실제로 작업 과정에 대해서도 배운 게 있어요. 초장기에 처음 배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작품이 안 들어오는 걸 환경 탓을 많이 했어요. 찍었던 영화들도 영화제 못가니까 인지도를 높일 기회나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고요. 그러다가 영화에 제작부 일을 했어요. 그때 다른 배우들은 프로필을 어떻게 내는지, 어떻게 어필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연출도 마찬가지로 작업과정 속 다른 위치에서 배우를 보게 돼요. 예전엔 그렇게 이해가 안 되던 연출가 마음을 알겠더라고요.(웃음)

 

Q.꼭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 연출을 한 것 같네요!

A.배우로서는 주연으로 출연한 필모그래피를 추가하여 감독들에게 어필도 할 수 있고요.


 

Q.배우를 꿈꾸기 전에는 어떤 직업을 꿈꾸셨나요?

A.다양한 걸 해봤어요. 처음 대학 들어갈 때는 상품의 완충이나 방습 같은 패키지 디자인을 하는 포장학과에 들어갔어요. 아버지가 취업이 잘된다고 해서요. 또 제가 고대사에도 관심이 많아요. 산이나 들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고대사도 공부하고 문화재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고민하다가 한국의 인디아나 존스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포장학과에서 문화재발굴학과로 전과했어요.
좀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개그맨을 꿈꾸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개그맨 선배들이 행사로 먹고산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벤트 행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MC 보시는 분을 붙잡고 따라다니면서 배워도 되겠냐고 물었죠. 따라다니라고 하더라고요. 그 형님(MC)이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게 도움될 거라고 제안해서 문화재발굴학과에서 연극영화과로 한 번 더 전과를 했지요. 한동안 레크레이션 강사도 했어요. 대학축제같이 큰 건 못 해봤지만 마을 축제, 돌잔치, 결혼식은 해봤어요. 결과적으로 학과를 세 번 옮기게 되었죠.

Q.다양한 진로 탐색을 해보셨네요. 지난 경험들이 배우로서 이점이 있을까요?

A.당연하죠. 일단 제가 다양한 진로 탐색을 해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나는 한 직업으로 65세까지 일하는 건 못할 거 같다는 거예요. 반면에 배우는 늘 새로운 삶을 살잖아요. 그래도 지금까지 제가 겪었던 직업의 배역이 들어오기도 했어요. <깍두기>라는 영화에서는 폐차장 직원 역할을 맡았는데요. 제가 20살 때 폐차장에서 알바를 해봤거든요. 캐릭터 상황에 대해 더 잘 알겠더라고요. 또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이라는 영화에서는 환경미화원을 맡았어요. 예전 20대 초반에 환경미화원이 안정적이고 준공무원이라고 하니까 준비를 했던 적이 있어요. 그 경험을 통해 얻은 직업군에 대한 정보가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거 같아요.
요즘 제 생각인데, 20대에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30대에는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전문화하는 과정인 거 같아요. 연기를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극단도 들어가 봤어요. 근데 연극 연기와 영화 연기는 메커니즘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완전 다른 분야인 거죠. 그래서 이제 다양한 경험을 하기보다 제일 좋아하는 거 하나만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영화가 더 좋았고 곧바로 현장으로 갔어요. 이젠 영화인으로서 전문화 시기라고 생각해요.

△연극 로 무대에 섰던 윤진님(제공: 윤진)

△연극 <어느 계단 이야기>로 무대에 섰던 윤진님(제공: 윤진)

Q. 마지막 질문이에요. 윤진에게 ‘배우’란?

A.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멋모르고 해본 거고 하다 보니 재미있고 의미도 찾아가는 거 같아요. 현업에 있는 선후배들에게 피해는 주지 않겠다는 마음도 있어요. 최종적으로는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현장에서도, 관객에게도 누구라도 친구처럼 말을 걸고 어울릴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땅을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윤진님이 말한 전문화 시기라는 것도 땅을 깊게 파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 이전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넓어지지 않았다면 깊어질 수 있었을까? 그의 전문화 시기가 늘 영화 현장과 맞닿아 있는 걸 보면,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쳐야만 전문화가 가능하다는 방증 같기도 하다. 차곡차곡 성장해가는 그의 존재감이 현장을 넘어서 곧 극장 객석에까지 미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