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자 인터뷰] 사람과 사람, 그리고 고민을 잇-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고민을 잇-다 

방문앞

  △청년청 302호. <내가 여기 잇-다>팀의 방문 앞

 

고민 많은 이들에게 ‘일단 해봐!’하고 소리지를 사람을 만났다. 생계형 오지라퍼, 정한나씨(hansu0930@gmail.com) 다.

글. 김예인 (ske0719@naver.com)  사진. 천유진(yoojin1072@naver.com)

Q.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연극 강사 겸 문화기획자 정한나입니다.

 

Q. <내가 여기 잇-다>라는 팀 이름이 참 독특해요. 어떤 의미인가요?

그 이름은 청년청 입주 파트너인 공예가 친구가 지은 이름이에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말 그대로 존재한다는 뜻이고, 또 다른 의미는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가진 청년들과 연대를 도모하는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싶다는 의지랄까요. 규모가 커지면 <우리가 여기 잇-다>로 이름을 바꿔 보자고도 했는데. 좀 오글오글하죠? (웃음)

 

Q. <내가 여기 잇-다>팀을 소개할 때면 2명이 아닌 ‘한수’(정한나)씨 이름만 나오는 걸 봤어요. 이제 혼자 활동하시는 것 같은데, 아쉬운 점이나 좋은 점을 꼽자면?

여전히 공간은 같이 사용하고 있지만, 파트너가 취직을 했어요. 그 이후로 그때 그때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활동 중이에요. 물론 늘 그 친구가 그리워요. 저는 사람들을 섭외하고 리드하는 걸 잘하는 편이고 짝꿍은 옆에서 서포트 해주고 정리하는 걸 잘해요. 지금도 가끔 ‘그 친구 있었으면 일이 술술 풀릴 텐데’ 하고 아쉬울 때가 있어요. 무엇보다도 비등한 입장과 자리에서 함께 기획하고 토론할 동료가 없다는 게 아쉽죠.

 

예술인난장포스터

△자유로움이 엿보이는 ‘예술인 난장’ 포스터

 

Q. 얼마 전에 청년청에서 열린 ‘예술인 난장’이라는 행사를 연출·기획하셨을 때, 어떤 애로사항이 있었나요?

사실 ‘난장’은 판을 벌이게 된 계기가 있어요. 아마추어들끼리 모여서 공동창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어요. 청년참 지원(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청년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소규모 프로젝트 비용을 지원해주는 사업)으로. 근데 배우 이것들이 누구 초대하기 싫대요. (웃음) 그래서 어떻게 관객을 끌어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난장’까지 구성하게 됐어요. 마침 혁신파크에서 ‘작당시작 프로젝트’가 열렸어요. 덕분에 행사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면서 ‘난장’까지 훅 진행됐죠. 지금 생각해보면 1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그렇게 큰 행사를 세팅한 것 자체가 미친 짓이었어요. 그래도 그땐 같이 공동기획했던 팀원들이랑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나처럼 꼭 전공자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해볼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컸구요.

 

Q. <예술인 난장>에서 특히 <가면>이라는 연극이 기억에 남아요.

네, 제가 연출했던 퍼포먼스예요. 기억에 남았다니 감사하네요. <가면>은 캐릭터들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요. 포장마차라는 공간만 놓고 매우 개별적이죠. 공동창작의 취지 자체가 배우들 각자 ‘하고 싶은 걸 하자’ 였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예를 들면 폭식, 강박증 같은 거였죠. 틀을 주지 않고 하고 싶은 거나 잘 할 수 있는 걸 해보라고 했을 때, 처음엔 다들 힘들어 했어요. 결과적으론 이 공동창작이라는 과정을 통해 배우들도 스스로 자신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게 바로 ‘주체성’이거든요. (작품이 조금 추상적일 수도 있지만, 극대화된 캐릭터들의 모습마다 자신과 닮은 점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게 관객과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믿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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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ARs6psLwS0 ‘예술인 난장’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

 

Q. 정말 좋았던 영화나 연극이 있나요?

연출에 영향을 줬던 영화로는 <이터널 선샤인>이 있어요. 일상적이지 않은 장면들을 잘 배치한 영화죠. 인상적인 연극은 정말 많은데요, 최근에 본 연극 중에는 <불행>을 꼽아요. 이 작품은 극장 전체가 무대나 마찬가지예요. 관객들은 특정 공간에 머물거나 배우를 따라 걷기도 하면서 작품을 관람하는데, 어디에서도 한 눈에 동시에 볼 수 없어요. 현대사회를 아주 즉각적으로 반영해 낸 작품이랄까요. 명확한 스토리 라인과 함께 앉아서 관람하는 기존의 친절한 연극과는 달라서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또 <몸의 윤리>란 작품도 있어요. 배우들끼리만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관계를 맺는 체험형 공연 방식이 충격적이었죠.

 

Q. 지금은 연극을 연출하시지만 처음엔 배우생활부터 시작하셨을 것 같아요. 그 계기가 있나요?

(지금은 종교가 없긴 한데요.) 중학교 때 교회에서 제가 대본을 써서 친구들과 함께 연극을 했어요. 그 뒤로 계속 연극을 하면서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어 했는데 부모님이 정말 강하게 반대하셨죠. 학부 전공은 국문과예요. 학부생 때 주로 연극 동아리와 학생회 활동을 많이 했어요. 휴학하고 잠깐 극단생활을 한 적도 있는데 멘탈이 박살나서 돌아왔어요. (웃음) 그 뒤로 기회가 생기면 무대에 올라가는 정도예요. 지금도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전 배우보다는 가르치고 끌어내는 능력이 더 탁월한 거 같긴 해요. 그러다 보니 연출이나 연극 강사도 하게 됐구요. 오히려 전공자가 아니라서 다른 경험들이 도움이 많이 돼요. 홍보나 컨설팅 회사를 다녔던 경험이나 글을 쓰는 것 등등.

 

청년예술7월오픈테이블 (5)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는 한수 언니

 

Q. 연극 연출은 그렇고, 이번엔 문화기획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어요.

기획 경험이 많아요. 학생회장이나 연극공연 했을 때도 그랬고, 홍보나 컨설팅회사를 다니면서 ‘세팅’을 하는 건 나름 전문가라고 생각해요. 난 예술가는 못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직장생활 하다가 이대로는 못 살겠고, 그래도 예술의 언저리에 걸쳐서 살 수는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어요. 그때 ‘문화기획’이라는 단어를 알았죠. 이거다 싶었어요. 문화기획자 양성이라는 국비지원 프로그램이 있어요.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문화 기획이 뭔지, 한국의 문화 행정이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등을 알게 됐죠. 그때까지도 막연했는데 청년청이란 공간을 만나면서 꿈이 구체화된 것 같아요.

 

Q. 예술을 낯설어하는 청년을 어떤 식으로 다독이고, 끌어오시는지 궁금해요.

전 예술이 거창하거나, 어려운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삶 곳곳에 예술이 녹아있어요. 글씨 쓰다가 조금 휘날리면 캘리그라피라고 할 수 있는 거고, 친구랑 얘기하다가 특정 상황을 재연하듯 말하는 것도 연기고 연극인 거죠. 예술이 어렵다는 인식을 깨려는 노력을 많이 해요. 예를 들어, 그냥 ‘연극 강좌’라고 하면 어려워 하니까, ‘연극 발성법을 활용한 스피치 클래스’ 같은 낚시(?) 강좌를 열어요. 수강생 중에 봉인해제가 안되면 벽에 붙어서 서라 하고 ‘소리 질러!’, ‘일단 읽어!’하면서 카리스마로 뽑아내기도 하고요. (웃음)

 

청년예술8월움직임워크샵당일

△ 청년예술인들과 몸짓으로 교감해보는 <움직임 워크샵>

 

Q. 예술을 전파하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연극을 하면서 많이 변했어요. 물론 좋은 쪽으로요. 아마도 배우 훈련 과정인 신체 훈련이나 발성 연습을 하고, 감정에 대한 훈련을 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대본을 파고들면서 자연스레 심리에 대한 공부가 되기도 했구요. 연극 자체가 세상의 축소판이기도 하니까요. 발성법을 배우면 내 목소리를 통해 감정을 확실히 전달하는 법도 알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어떤 감정이나 느낌으로 말을 하는지 가늠할 수 있어요. 거기에 표정이나 제스처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이 붙으면 훨씬 소통에 탁월해지는 거죠. 이런 장점을 나만 아는 게 아쉬워서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 같아요. 단순히 예술 장르로서의 연극만이 아니라, 내 삶에 녹아들 수 있는 연극을 다른 이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어요.

 

Q. 왜 하필 ‘청년’과 예술’이 접목된 프로젝트를 위주로 만들고 계신가요?

제가 청년 당사자고, 제 관심사가 예술이라 자연스럽게 두 키워드를 엮게 된 것 같아요. 굳이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한다면 전 ‘비주류’에 속한다는 생각을 해요. 주변에 제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 생활 10년차에, 통장에 몇 천씩 모아놓고 결혼도 하고 애기도 낳는 보편적인 생애주기에 따라 살아요. 전 그렇게 살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경제적으로 풍족하다거나 안정적 삶과는 거리가 멀죠. 그런데도 이런 ‘비주류’적 삶을 고집하는 건,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인생이고 ‘나’ 다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근데 저 말고도 저와 비슷한 친구들이 있어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투쟁이 되는 친구들. 그런 이야기들을 모으고, 풀어내고 싶어요. 아마 제가 늙으면 중년, 노년의 예술을 하겠지요. (웃음)

 

청년예술7월오픈테이블 (3)

△ 청년과 예술이란 키워드로 이야기 나누고, 네트워킹도 하는 <오픈 테이블>

 

Q. <내가 여기 잇-다> 소개를 보면 ‘사회 문제를 재해석한다’는 말도 있던데, 혹시 요즘 집중하고 있는 사회문제가 있을까요?

입주 초기에 우리의 포커싱은 ‘화폐의존도’와 ‘시간 빈곤’ 탈출이었어요. 실제 삶에서도 화폐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실험 중이에요. 소득을 늘리기 보다는 소비를 낮추는 쪽으로. 시간 빈곤은 저도 여전히 허덕이는 중이네요. 그런데 이런 사회적 메시지가 부담스러울 만큼 강한 작품을 만들고 싶진 않아요. 보편적인 이야기 속에 자연스레 녹여내고 싶어요. 창작면에서는 그렇고, 전 우리 사회와 공동체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사회 참여적인 것이라 생각해요. 사람 한 명 한 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술이 사회참여적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제가 추구하는 커뮤니티 아트의 방향성이기도 하구요.

 

Q. 페이스북을 보니까 ‘예술 협동조합’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던데.

혼자 작업하면서 한계가 따르는 일이 많다 보니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하게 협동조합이란 형태가 잘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협동조합이란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고요. 단순히 하나의 시스템이 아니라 운동이나 사상으로 볼 수도 있어요. 그런 것까지 감안하면 동료를 더 찾기 힘들어지는 거죠. 그래도 틈틈이 주변 사람한테 흘리는 중이에요. (웃음)

 

작업대

△일정&포스터 메모로 빼곡한 벽

 

Q. ‘오지랖’에 대한 얘기가 참 많이 나왔어요. 앞으로 더 오지랖을 피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맞아요. 예전부터 ‘오지랖 피우느라 시간낭비한다’는 얘길 참 많이 들었어요. 특히 어머니한테서. 그래서 저는 ‘오지랖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했죠. 그러다 ‘문화기획’까지 온 것 같아요. 저라는 인간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영역을 드디어 찾았달까요. 앞으로의 계획은 미정이에요. 현재 입주 중인 청년청에서 재계약을 할지, 혹은 여길 떠나 다른 곳에서 오지랖을 피울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구요.

 

인터뷰가 다 끝난 뒤 한나, 아니 한수 언니는 우릴 배웅해줬다. 누구라도 시간만 맞으면 그에게 상담 받을 수 있는 ‘야매상담소’에 놀러오라고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그리고 고민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다웠다. 줄곧 말했던 오지랖도 느껴졌다. 아마 오지랖은 그녀 삶의 원동력이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손을 흔드는 그의 뒷모습에서, 오지랖을 뛰어넘는 진한 정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