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자 인터뷰] 우리의 문화, 한국 정원을 알리다 ‘월하랑’ 대표 신지선

2019-09-10T23:01:13+00:002019. 09. 7.|

1인 기업가와 프리랜서로 살아가기

연남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월하랑’ 신지선 대표와의 인터뷰 모습.

연남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월하랑’ 신지선 대표와의 인터뷰 모습.

글, 취재 : 김주연(mid122jy@gmail.com)
사진, 취재 : 김진희(ejlee05200@gmail.com)

‘월하랑’(http://www.wolharang.com)은 한국 정원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업이다. ‘월하랑’을 운영 중인 신지선 대표는 경복궁 정원 투어, 창덕궁 정원 투어 등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부터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까지, 1인 기업가이자 프리랜서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한국 사람에게도 생소한 한국 정원을 알리는 일이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묵묵히 노력해 온 신지선 대표의 이야기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가는 청년들에게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현직자 소개]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 정원을 좋아하고 한국 정원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월하랑’ 대표 신지선입니다.

Q. 대학교 전공도 조경학과이고 지금 하시는 일도 조경과 관련된 일인데요. 원래부터 조경에 관심이 있었나요?

원래는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꿈없이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게 당연한 시대였고, 돈을 벌기 위해 취업을 한 거라서 제가 원하는 일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20대 중반에 ‘1년 동안 꿈을 찾아보자’ 이렇게 결심했어요. 그 1년 동안 책도 읽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는 등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해봤어요. 그런데 1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제가 하고 싶은 걸 못 찾더라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조경’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어요. 조경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나무 심는 일이래요. 그 말을 듣고 ‘괜찮은데? 나무를 심는 데 돈을 벌 수 있어?’ 이렇게 생각했어요. (웃음) 그런데 그날이 제가 정했던 데드라인에서 1주일밖에 안 남은 시기였어요. 그래서 그날 바로 조경학원론 책을 빌려서 1주일 동안 퇴근하고 집에 와서 공부했어요.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노트에 정리해가면서 읽었는데, ‘이거다’ 하는 강한 확신이 들더라고요.

Q. 그럼 대학교를 졸업하시고 다시 조경학과에 입학하신 거예요?

저는 학사편입을 했어요. 조경을 공부하겠다고 결정을 하고 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여러 고민을 했죠. 처음에는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하니까 다시 학교에 들어갈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조경 분야는 관련학과 출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다고 제게 용기를 주셨고, 학교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죠. 

Q. 편입 준비 기간 동안 직장과 병행했나요?

처음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하다가 중간에 그만두었습니다. 12월이 시험이었는데, 3월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약 9개월 동안 편입을 준비했어요. 조경 기사 자격증 공부도 하고 조경학 관련 논문들도 읽으면서 감을 잡았죠. 그렇게 준비해서 원하는 대학 조경학과에 합격했습니다.

Q. 조경학과에서는 어떤 걸 배우셨나요?

조경학과는 기본적으로 디자인스쿨입니다. 자신의 디자인이 어떠한 배경으로 이렇게 나왔는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되요. 우선 몇 년에 걸친 스튜디오 수업으로 기본적인 툴과 논리적 배경을 설립하는 것을 배워요. 뿐만아니라 조경사, 서양미학, 생태 등 여러 가지를 배우는데 아쉽게도 수목에 대해서는 심도 깊게 다루질 않았어요. 그래서 수목학과 수업을 들으며 보충하고 학부생 시절 궁금했던 동양미학은 미학과 수업을 들었어요. 이때 배웠던 내용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Q. 직장을 그만두고 새롭게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만큼 조경이 흥미로우셨다는 건데, 조경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조경을 선택했을 당시에는 조경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장소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조경은 인간이 자연을 가장 잘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공간을 만든다는 게 단순히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공간을 만드는 사람 그 자체가 공간에 다 표현이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사람을 공부하게 되고, 시대를 공부하게 되고, 철학과 사상을 공부하게 돼요. 이런 다양한 이유로 조경에 매력을 느낍니다.

Q.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한국 정원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조경학과를 들어갔을 때만 해도 한국 정원에 관심 있던 건 아니었어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저의 정체성을 고민하다 보니, 한국인이라는 게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그리고 제가 배웠던 조경, 정원들이 모두 각 나라의 정체성을 보여주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제가 정원을 만든다면 우리나라의 색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월하랑' CI. '월하랑' 홈페이지.

‘월하랑’ 홈페이지.

 

[‘월하랑’ 대표로서의 삶]

Q. 현재는 ‘월하랑’ 대표로 계시면서 한국 정원을 알리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월하랑’을 설립한 건가요?

아니요, 졸업하고 나서는 정원 만드는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1년 정도 일을 했어요. 그런데 들어가 보니 정말 박봉에다가 새벽 2, 3시에 퇴근했는데도 아침에 다시 출근해야 하고… 그런 생활이 조경회사의 일상이더라고요. 그때 든 생각이 ‘이게 계속되면 나는 한국 정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시간이 흘러가겠다’였어요. 그래서 회사를 다시 관뒀습니다. 그때 되게 힘들었어요. 제가 사회 부적응자라는 생각도 들고, 그냥 회사 가기 싫은데 핑계 대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실패하는 기분이었어요.

Q. 퇴사하신 이후에는 무엇을 하였나요?

일단 먹고살려면 뭐라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조경회사를 관두자마자 조경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문화재수리기술자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세 달 정도 공부했는데, 책상에서만 공부하다보니 직접 가서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정원 답사를 시작했어요. 차에 옷 싣고 책 싣고 전국을 누볐죠. 한 달 좀 안 되게 다녔어요. 그런데 답사가 굉장히 힘들어요. 한 장소를 볼 때 적어도 3시간은 봐야 해서 하루에 2~3곳 정도만 들릴 수 있었어요. 매일 저녁에 녹초가 돼서 숙소로 왔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그 답사를 통해서 한국 정원에 깊은 감동을 하였어요. 그리고 이렇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우리나라 문화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원봉사로 한국 정원 투어를 시작했고, 그게 확장되어 ‘월하랑’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Q. 한국 정원 답사에서 특별히 좋았던 곳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부석사, 송광사, 다산초당, 논산 명재고택 등 아름다운 한국정원이 많아요.

Q. 부석사에도 정원이 있는 줄 몰랐어요.

많은 분이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그런데 사실 교토 은각사나 금각사에 가서 정원 보시잖아요. 우리나라도 똑같아요. 바로 이런 점이 제가 ‘월하랑’ 사업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많은 사람이 부석사에 정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석사 올라가는 길에 석축*이 있는데, 그게 아무렇게나 놓은 게 아니라 훌륭한 정원 디자인 중 하나예요. 심지어 지금은 그 앞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놔서 잘 보이지도 않아요. 저는 소나무로 가려진 곳 안으로 들어가서 석축을 봤는데, 정말 아름다워요. 개인적으로 속상한 점은, 우리나라 정원이 정말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 정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에요.

*석축 :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가장자리에 돌을 쌓아 올린 벽

부석사 석축. 부석사 석축에 있는 돌들은 높이와 돌 간 간격이 서로 다르다. 현직자 제공.

부석사 석축. 부석사 석축에 있는 돌들은 높이와 돌 간 간격이 서로 다르다. 현직자 제공.

Q. 사실 ‘한국 정원’이라고 했을 때 뚜렷한 이미지가 떠오르진 않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한국 정원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한국 정원은 만들어진 이유부터 다른 나라의 정원과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원은 자신의 힘과 권력 그리고 부를 보여주기 위해 조성됩니다. 하지만 조선의 정원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조성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를 들어 조정에서 잘나가던 선비가 유배를 당하거나 좌천을 당해 중앙에서 물러나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합시다. 그 선비는 중앙권력에 신물이 났을 수도 혹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수도 있겠죠. 조선 선비들은 그럴 때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즉 정원을 만든 이유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였고, 자신의 가치관을 정원 속에 담되 눈에 띄지 않게 조성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원은 검이불누 화이불치(檢而不陋 華而不侈)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짚고 넘어갈 점이, 현재 전세계적으로 실제 관람이 가능한 정원은 대부분 16세기 이후의 정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정원들 또한 대부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특징들이 한국 정원이라기보다는 조선시대 정원의 특징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죠.

창덕궁에서 투어를 진행 중인 신지선 대표의 모습. ‘월하랑’ 페이스북.

창덕궁에서 투어를 진행 중인 신지선 대표의 모습. ‘월하랑’ 페이스북.

Q. 현재 월하랑에서 운영 중이신 경복궁 투어, 창덕궁 투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경복궁 투어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합니다. 조선이 어떻게 수도를 정하고 국가를 상징하는 공간인 경복궁을 조성했는지 보면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러한 관점에서 경복궁은 조선의 예법이 공간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왕의 공간, 신하의 공간, 왕과 신하가 함께 만나 정치하는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리고 그 안의 왕의 정원, 왕비의 정원은 어떠한 모습인지 보여드립니다.

이와는 다른 느낌으로 창덕궁 투어에서는 여러 왕이 조성한 정원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드립니다. 정조, 숙종, 인조, 효명세자, 고종이 조성한 정원의 모습들을 소개하죠. 왕마다 추구하는 성향과 상황에 따라 정원의 모습이 다릅니다.

Q. ‘월하랑’에서 한국 정원 투어 일을 하시면서 보람찼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문화가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껴요. 특히 투어를 마치고 “경복궁과 창덕궁에 수도 없이 왔지만 오늘이 가장 좋았다.” 혹은 “건축물이나 역사 위주로 이야기를 들을 때보다 정원의 관점으로 공간을 경험하니 새롭고 더 깊이 있었다.”라는 말을 들을 때 보람차죠.

Q. 반대로 ‘월하랑’을 운영하시면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한국 정원에 대해 알리는 게 좋아서 시작했는데, 저도 지치더라고요. 제가 ‘월하랑’을 설립한 취지와 사업은 다른 얘기잖아요. 제 진심이 이렇다고 누가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고, 제 진심에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아요. 지금까지 했던 것도 사실상 자원봉사 수준으로 한 거예요. 작년에는 출산한 지 70일 만에 3시간 걸으면서 투어를 할 정도로 일이 정말 많았는데, 올해는 또 달라졌어요. 특히 올해 초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내 인생을 왜 여기에 투자했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포기하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어요.

Q.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극복했다기보다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일이 들어왔어요. 방송국에서 한국정원 프로그램 기획 제의도 받았고, 책 출판 제의도 들어왔어요. 사람 일이 꼭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한다고 해도 원하는 시기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잠깐 쉬어도 기회가 오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Q. ‘월하랑’은 대표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개인적으로는 한국 정원과 관련된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이고, 대표로서는 한국 정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기업이길 바랍니다.

 

[프리랜서로서의 삶]

강연을 하고 있는 신지선 대표의 모습. 현직자 SNS.

강연을 하고 있는 신지선 대표의 모습. ‘월하랑’ 페이스북.

Q. ‘월하랑’ 뿐만 아니라 문화재수리기술자, 한국전통조경학회 이사, 강연가 등 다양한 일을 하시는데, 많은 일을 병행하려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떻게 일정을 관리하나요?

일의 양에 따라 결정됩니다. 일이 없을 때는 쭉 쉬기도 하고, 많을 때는 쉬는 날 없이 한 달이 지나가기도 해요.

Q. 프리랜서의 장단점이 궁금해요.

장점은 상사가 없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고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 일할 수 있을 때 하면 되어요. 하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고,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서기 전까지 정말 힘들어요.

Q. 다시 취업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초반에는 그런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제 주위 사람들 대부분 회사 생활을 하는 환경이라 더욱 그랬죠. 하지만 제 성격상 회사 생활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 결론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사회 부적응자라는 생각도 들고,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지기도 해서 스스로 자꾸 작아졌어요.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도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이 방법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힘들 때마다 ‘이게 쉬운 일이면 누구나 하겠지. 어려우니까 많이들 이 길을 걷지 않겠지. 될 때까지 버티자’라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Q. 힘든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일을 하시는 모습이 정말 열정적이신 것 같아요.

제가 이 길을 선택했으니까 그냥 하는 거죠. 저는 다른 방법을 모르겠어요. 우선순위가 정원이니까 그 이외 생활이나 수입은 그것에 맞춰서 하는 거예요. 전 조경학과에 입학했을 때 ‘내가 적지 않은 나이에 조경을 선택했으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 달라도 끝까지 간다.’ 이렇게 결심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힘들기는 했어요. 악몽도 꿨어요. ‘옛날 다니던 회사가 얼마나 좋은 회사였을까’ 이런 내용으로요. (웃음) 그만큼 엄청나게 후회하기도 했어요. 백수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만성두통도 생겼고요. 그리고 제 친구들은 좋은 회사 들어가서 잘 사는데 저는 월 100만 원도 못 벌 때가 있어요. 이럴 때는 사람도 못 만나고 되게 힘들었죠.

Q.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냈나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하고 3년 정도 되었을 때는 ‘이 정도 고생했으면 잘 되겠지?’ 했어요. 그런데 4년 차가 되었을 때도 안됐을 때는 ‘뭐지?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렇게 생각했죠. 그러다가 5~6년 차가 되어갈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동안 뭐가 부족했는지, 그 시간이 왜 나한테 필요했던 건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학문적으로 그 정도의 시간이 있어야지만 느낄 수 있는 깊이가 있었어요. 지금 하는 연구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고요.

인격적으로도 변화가 있었어요. 이전까지는 제가 굉장히 자만심이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했는데도 생각처럼 안 되니까 화도 나고 믿기지도 않았죠. 그러다가 바닥 끝까지 갔을 때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잘나서 잘 됐던 게 아니라는 걸. 무언가를 이룬다는 게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운이 따라주고 기회가 생겨서 그런 것이고, 반대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그래서 제가 무엇인가를 이루더라도 제가 잘난 게 아니라 감사할 일인 것이고, 무엇인가 잘 안되더라도 주눅들 필요 없이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인생에 기회를 만나지 못하면 아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지금은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나요?

‘한국전통정원의 재해석을 통한 대중화 방안’이라는 연구인데요. 아는 박사님의 지인분을 통해 그 연구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 덕분에 제가 존경하는 김봉렬 총장님(한국예술종합학교), 김영모 총장님(한국전통문화대학교)과 인터뷰도 할 수 있었어요. 몇 년 치 공부에 도움이 될 만큼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무리]

Q. 앞으로 목표가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자’.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정원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생각으로, 어떤 구체적인 방법으로, 어떤 공간을 만들 것인가’. 이 세 가지 고민에 답을 하기 위해서 제가 지금 여러 일을 하는 거예요. 단순히 예쁜 정원이 아니라, 그 공간을 원하는 사람의 요구를 이해하고 그걸 만족시키면서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어요. 

Q. 한국 정원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기를 바라나요?

일본, 중국, 서양처럼 한국에도 정원이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알아줬으면 해요. 한국만의 문학, 건축, 도자기가 있는 것처럼 정원도 한국의 문화 중 하나거든요. 그리고 다양한 한국 정원이 만들어지고 관리도 잘 되기를 바랍니다. 일단 숨겨진 한국 정원을 많이 찾았으면 좋겠어요. 

Q. 오늘 인터뷰에서 대표님은 용기 있고 멋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겉으로는 제가 한 일들이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삶을 직접 살아가는 사람은 28살에 초밥집 알바하고 난방도 안되는 집에서 양말 7겹 신어가면서 버텼어요.

이제까지 제 삶을 표현하자면, 지난하고 처참하기도 했고 행복하고 보람있기도 했어요. 즉 얻는 것도 있지만 항상 대가가 따랐죠.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항상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요하고, 생각하는 때에 생각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생각과는 다른 때에, 다른 모습으로 이루고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꿈을 이루는 삶만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직장생활 3년 이상 하는 모든 사람을 존경합니다. 저는 못하는 일이에요. 각자 할 수 있는 것, 감당할 수 있는 것, 참을 수 있는 것이 다릅니다. 꿈을 쫓으면 지난한 삶을 겪어야 할 수도, 안정적인 삶을 쫓으면 열정이 아쉬운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에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결정을 믿고 그 안에서 장점을 찾고, 큰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를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