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자인터뷰] “예술만 해도 먹고살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싶어요.”

2020-09-11T13:56:41+00:002020. 09. 11.|

문화예술·공간 기획자 박희도를 만나다.

 

글, 취재, 사진 / 김민준(coolboy95@naver.com)

 

연극도 하고, 청년활동가이기도 하고, 공간 기획도 하며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연극배우? 활동가? 기획자? 아니, 본인은 본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다양한 일들 사이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가지고 문화예술·공간 기획자 박희도 님을 상도동 대륙서점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서점을 개조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희도 님의 생각을 들어보자.

 

사진 . 대륙서점에서 인터뷰 중인 희도 님.

사진 . 대륙서점에서 인터뷰 중인 희도 님.

 

#자기소개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3년 차 기획자, 2년 차 배우, 5년 차 공간 운영자, 5년 차 행정 담당자인 박희도입니다. 여러 직무와 직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저를 어떻게 한 마디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한테 소개할 때는 이것저것 한다고 설명을 하는데, 요즘에는 직관적으로 그냥 연극배우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남부권 에너지센터에서 기획팀장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남부권 에너지센터는 한강 이남의 11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서울시 태양광 사업인 ‘태양광 미니발전소’에 대한 시정 홍보, 교육, 인식개선 등을 목표로 하는 단체고요, 저는 센터의 목표에 필요한 콘텐츠 제작, 커뮤니티 구성 등 기획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어요.

 

#기획자 박희도

Q. 희도 님에게 기획이란 어떤 업무인가요?

A. 작은 조직에서 일을 많이 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직무를 다 맡게 되더라고요. 대기업이나 공무원 조직이라고 하면 인사, 노무 등 조직체계가 확실하게 잡혀 있는 반면에 마을기업이나 지역활동의 경우 기획자가 많은 일을 해야 해요. 그 속에서 플레이어이기도 하고, 디렉터이기도 한 거죠. 사람들이 기획자가 뭐 하는 직업이냐고 물으면 그냥 ‘다 하는 직업’이라고 얘기해줘요. 그러다가 선수가 없으면 내가 뛰는 거죠. 일종의 멀티플레이어인 셈입니다.

 

Q. 20187월부터 201912월까지 무중력지대 성북에서 커뮤니티와 공간을 기획하는 매니저로 활동했다고요. 성북구라는 지역은 희도 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인가요?

A. 일단 성북구는 제가 사는 곳인데, 풀뿌리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가 굉장히 잘 구축되어 있어요. 예술가와 행정 조직, 혹은 청년조직과 행정 조직 간의 협업 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동네는 별난 사람들도 많고, 예술가들도 많아요. 한 마디로 대안적이고 대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Q. 그런 공간에 대한 애정인 거군요.

A. 어릴 때부터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계기는 잘 모르겠는데, 공간 운영을 해보고 싶었어요. 어릴 때 어느 날 갑자기 커피숍을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등학생 때는 내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했고, 그 경력을 여기저기서 써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무중력지대 매니저 업무 역시 그런 것들의 연장선이에요. 무중력지대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겠다! 라고 해서 하게 된 건 전혀 아닙니다.

 

Q. 2018년에 무중력지대에서 남북밥상회담을 진행했더라고요. 어떻게 해서 기획을 하게 됐는지 듣고 싶습니다.

A. 남북밥상회담은 성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단체들과 협업을 통해 기획한 사업인데, 인식개선을 위한 프로젝트였어요. 북한 이탈 주민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벽을 어떻게 허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2018년 당시 남북정상회담 덕분에 분위기가 좋았으니 ‘우린 정상회담은 못 하지만 밥상회담이라도 해보자’라고 해서 나왔던 아이디어였어요. 북한에서 온 청년들이 북한 음식을 준비해서 성북에 거주하는 청년들을 초대하는 형식인데, 무중력지대가 판을 깔아준 거죠.

 

 

사진 . 무중력지대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희도 님 (사진 제공 박희도)

사진 . 무중력지대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희도 님 (사진 제공 박희도)

 

Q. 2019년에는 공간운영 매니저로 일하면서 청년들에게 공간을 지원해주는 우리 동네 무지랑사업을 기획했어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지원 사업은 왜 필요한 걸까요?

A. 이건 제가 대학을 다니면서도 느꼈던 건데 동방(동아리방)과 연습실은 한정되어 있지만, 그 공간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은 많단 말이죠. 저랑 제 친구들은 빈 곳을 찾아 헤매는 경험을 그때 정말 많이 했어요. 그때 이후로 노인 분들에게 노인정이 있다면, 청년들에게는 ‘청년정’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노인 분들은 서로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놀 공간이 있는데, 청년들은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카페 같은 곳밖에 없잖아요.

그렇다면 그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고민해보니, 동네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을 발굴해서 무대 위로 올려야겠더라고요. 제가 무중력지대에서 했던 업무가 그들을 계속 만나고 다니는 거였어요. 가서 만나보고,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고, 흥미롭다 싶으면 ‘우리(무중력지대)는 돈과 공간을 지원해드릴 수 있는데 같이 해볼래요?’라고 물어보는 거죠.

 

#연극배우 박희도

Q. 이제부터는 연극에 대해 질문을 해볼게요. 지금도 작품을 준비 중인 거로 아는데,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A. <맥햄리셀>이라는 작품인데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인 맥베스, 햄릿, 리어왕, 오셀로를 합해서 각색한 작품이에요. 리어왕에 나오는 글로스터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또 악화되고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과 추후 일정 문제 등으로 예정대로 공연을 진행하되 관객 없이 진행하는 방향을 검토 중입니다.*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에 따라 10명 이상으로 구성된 팀이 한 번에 모일 수 없어 소규모(5인 이하) 단위로 장면 연습을 하고 있어요.

*인터뷰 이후 희도 씨는 기자에게 <맥햄리셀>이 10월 중 2주간 관객을 받는 장기공연을 하기로 변경되었다고 전해왔다.

 

Q. 어떻게 해서 연극배우로 데뷔를 하게 됐나요?

A. 2011년 가톨릭대학교 내의 연극 학회인 ‘성심극예술연구회’에서 연극을 처음 경험했어요. 대학을 졸업한 이후 몇 년 동안은 연극을 하지 않다가. 2018년 말에 ‘안톤체홉학회’라는 극단에서 진행하는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작품에 단역으로 캐스팅된 게 첫 데뷔가 됐습니다. 당시 극장을 운영하시는 대표님이 ‘너는 한국에서 러시아 연극을 하기에 좋은 외모인 것 같다’(웃음)라고 말해주셔서 2019년 1월 <바냐 삼촌>이라는 작품에 합류하게 된 거예요. 그게 제 대학로 데뷔였습니다. 그 극단이 체호프의 작품을 많이 다루니까 저도 체호프 작품에 많이 출연하게 됐어요.

 

Q. 체호프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체호프의 작품은 일단 재밌습니다. 1900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품 속 이야기는 2020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지금보다 더 진보적인 얘기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당시 격동기 러시아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부자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잘 보여주죠. 낡았지만 낡지 않은 고전의 매력을 체호프의 작품에선 느낄 수 있어요. 지금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Q. 희도 님에게 연극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A. 사실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요즘 고민을 많이 해요. 나는 연극을 왜 하지? 훈련일까? 자기성찰일까? 아니면 극복? 일단 재밌어서 하는 거고요, 탈출구가 되어 주기도 해요. 그냥 직장생활만 하는 건 재미가 없잖아요. 만약 연극을 안 한다면 지역 활동을 관성적으로 하다가 저도 모르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활동을 위한 활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체성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자신 있는 분야를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의 경우는 연극이 지역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데 있어 하나의 방법론 혹은 나침반인 셈이죠.

 

Q. 아까 코로나19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는 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올해 팬데믹 때문에 엄청난 영향을 받았겠어요.

A. 그렇죠. 제가 작년 12월에 무중력지대를 관두면서 올해 1, 2월에는 을지로의 소극장을 공동운영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어요. 2월에 상황이 악화되면서 각종 지원사업이 연기되거나 취소됐어요. 지원사업을 받아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수익을 내야 인건비라도 충당이 될 텐데, 이런 계획들이 수포가 된 거죠. 상황의 여의치 않아서 실업급여를 받게 됐고, 덕분에 숨통이 조금은 트여서 자문위원 정도의 일만 하게 됐어요. 실업급여가 6월에 만료가 되면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지금 있는 이 공간(대륙서점)을 인수받아서 장사를 계획 중에 있어요.*

 

* 인터뷰 이후 희도 씨는 기자에게 코로나19상황 장기화와 사회적거리두기 2.5단계 격상 등에 따라 올해는 대륙서점을 단체 사무실로만 이용하기로 했다고 전해왔다.

 

Q. 실업급여를 받으셨을 테니 코로나19로 인한 예술인 지원사업은 신청을 하지 못했겠네요?

A. 저는 보통 낮에는 4대 보험이 되는 단체에서 일하다가, 밤에는 공연하는 예술가예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4대 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으면 예술인 지원사업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창작지원금* 의 경우도 저는 받지 못해요. 저는 지원사업에서 주는 지원금을 훨씬 웃도는 월 급여를 받으면서 예술활동을 하고 있어서, 굳이 제가 그 돈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 창작지원금 지원사업 : 예술인들이 예술 외적인 요인으로 예술 활동을 중단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보호하고, 창작 준비에 필요한 지원을 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사업이다.

 

Q. 본인의 예술활동은 지원사업과 무관하다는 거네요?

A. 네. 저는 예술인이지만, 다른 일을 통해서 돈을 벌고 있는 예술인이기 때문에 예술인 지원제도와 관련해서 당사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죠. 그래서 저는 제 예술활동의 방향이 남들도 예술을 해서 여유가 생길 수 있는 판을 만드는 데 있어요. 관립극단을 하나 만들어서 제가 운영하는 것이 제 중장기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월급 받으면서 연극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Q. 보통 예술을 한다고 하면, 배가 고픈 직업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잖아요. 희도 님 역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봤을 것 같습니다.

A. 저는 그런 질문은 하면 안 되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을 해서 배가 고프면 안 되죠. 사실 저처럼 낮에 일하는 게 좋은 현상은 아니에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또 엄연한 현실이에요. 만약 월 150만 원이라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있거나 월급을 주는 극단이 있다면 낮에 따로 일할 필요 없이 연극을 준비하는 일에만 투신을 하겠죠. 그게 안 되니까 저는 다른 일을 하면서 연극판을 기웃거리는, 한 마디로 ‘발을 걸치고 있는’ 예술가인 거예요.

그래서 11월에 대륙서점에서 낭독극이나 연극 등의 공연을 할 계획인데, 그때 출연할 예정인 동료 배우들에게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게 할 거예요. 공연 연습을 할 때마다 연습비를 주진 못하지만, 회당 몇 회 출연하면 얼마를 준다, 정도가 적힌 계약서를 미팅할 때 내밀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하고 싶어요. 이렇게 운영되는 극단이 거의 없거든요.

 

#청년활동가 박희도

Q. 무중력지대 매니저, 연극배우를 거쳐서 2020년 초에는 성북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성북 청정넷)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성북 청정넷에 대한 소개와 함께 희도 님이 한 일에 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A. 2019년에 무중력지대 성북에서 활동하면서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문화 분과에서 운영진을 맡고 있었어요. 당시 서울청정넷 민주주의 분과에서 자치구별로 청년정책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성북에도 청정넷이 만들어진 거예요. 무중력지대 그만둔 뒤에 성북 청정넷이 자리 잡히기까지 자문과 행정 역할을 부탁받아서 하게 됐어요.

 

Q. 여러 가지 일들이 들어올 것 같은데,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A. 계약과 약속에 의한 일일 경우에도 그것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경우를 선호해요. 물론 계약관계에 의한 업무를 자유롭게 하긴 힘들지만, 융통성이 있으면 좋죠. 그래서 제가 지역 활동 같은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기도 해요.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롭고, 저녁에 제 시간을 사용할 수 있으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한 인터뷰를 돌이켜 보건대, 특별한 계기라는 게 잘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요(웃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어쩌다 일이 생기는 것의 연속인 것 같은데, 그러면 희도님은 나중에도 어떻게든 흘러가는 대로 뭔가를 하고 있겠지라고 생각을 하는 편인가요?

A. 네. 어디선가 무언가를 하고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해요. 다만 흘러가면서도 구체적인 맥락이 잡혀가긴 해요.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서 카페에서 일하며 공부를 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서, 조리를 배우려다가 굳이 대학에서 비싼 돈을 주고 배울 필요가 있나 싶어서 철학과를 골랐고,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병으로 가는 건 저 자신을 납득시킬 수 없어서 ROTC에서 장교로 군 복무를 했어요.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 일들이 저에게는 맥락이 되고, 경험이 되고, 그게 경력으로 연결이 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제가 걸어온 길은 대기업이 원하는 경력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너무 중구난방이고,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를 테죠. 하지만 적절한 곳에 데려와서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저를 늘 찾아줬다고 저는 생각해요. 밥할 줄 알고, 카페 운영할 줄 알고, 장교로 군 복무를 해서 공문서 만들 줄 아는 저라는 사람을 데려가서 청년 공간을 운영 및 기획하고 서울시와 행정적으로 소통하는 데 써먹었어요. 그런 식인 거죠.

 

#앞으로의 계획과 조언

 

사진 . 무중력지대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희도 님 (사진 제공 박희도)

사진 . 무중력지대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희도 님 (사진 제공 박희도)

 

Q. 희도 님의 커리어를 찬찬히 따라가고 있으면, 도전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혹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두려움은 없는 편인가요?

A. 엄청 두려워하는데, 눈 감고 뛰어드는 거죠. 지금 남부권 에너지센터에서 일한다고 소개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에요. 왜냐면 저는 태양광 사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계속 배워가는 중이고, “온 지 얼마 안 돼서 상세하게 설명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라고 말할 용기는 있어요. 연극도 그래요. 2, 30년 연극을 했던 선생님께 배우는 중인데 누군가가 저에게 “유명한 사람 밑에서 뭘 배웠길래 연기가 그 모양이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무대 대걸레질은 잘해요”라고 말할 용기가 있어요.

 

Q. 혹시 공간기획과 연극 외에 다른 일들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A. 글쓰기를 해보고 싶은데, 소설이나 연극 대본을 잘 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유독 글쓰기는 다른 일에 비해 눈 감고 뛰어드는 일이 안 되더라고요. 글은 영원히 남잖아요. 흔적이 남는다는 게 두려워요. 연극이라는 게 사실 포괄적인 단어예요. 저는 지금 연기를 하고 있지만, 대본을 쓰는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Q.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본인이 잘하는 일을 잘 찾았으면 좋겠어요. 잘할 수 있는 걸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별다른 경력을 쌓아놓지 않고 공무원을 찾아가서 “저는 관립극단을 만들고 싶은데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면 듣지도 않겠죠. 그런데 내가 여기서 공연을 몇 년간 하고, 소극장을 몇 년 운영하는 등 경력을 쌓아놓으면, 그때 결정권자를 찾아가서 제안하면 들으려고 하지 않겠냐는 거예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제 또래 청년들에게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