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자인터뷰] 출판사 편집, 기획자 K를 만나다

2020-12-17T14:11:47+00:002020. 11. 27.|

“사람들이 놓치고 간 것 중에서 더 좋은 것들을 캐내는 게 중요해요.”

 

취재, 글 김민준 기자 / coolboy95@naver.com

 

은유 작가는 말한다. “서점에서 결제 한 번으로 손에 쥐는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땀방울이 몇 백만 개쯤 들어갔는지, 원고를 써서 한글파일로 넘기면 몇 사람의 손길 거쳐 몇 리 길 돌아 독자에게 당도하는지 소상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출판하는 마음>) 우리는 항상 책을 읽고 있지만, 은유 작가의 말대로 책 뒤에 누가 있는지, 어떤 시스템이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출판사 <필로소픽>에서 8개월 동안 근무 중인 편집․기획자 K를 만나서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 인터뷰는 현직자의 요청으로 얼굴과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번역 검수 중인 K(사진 제공 K)

번역 검수 중인 K(사진 제공 K)

 

#자기소개 및 업무소개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대학원을 다니면서 출판사 <필로소픽>에서 일하고 있는 8개월 차 기획자, 편집자 겸 마케터 K라고 합니다.

Q.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평소에 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SNS에 관련 글을 자주 올렸어요. 그러다가 <필로소픽> 편집자 한 분을 알게 됐는데 그분이 제가 평소에 올리는 서평을 읽고 면접을 보러 오지 않겠느냐고 권유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대학교 4학년 때 방학 때만 일하려고 했었는데, 대학원에 들어간 올해도 계속하고 있네요.

 

#<필로소픽>의 업무 및 근무환경

Q. 기획, 편집, 마케팅 모두를 맡고 있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 건가요?

A. 큰 출판사의 경우는 마케팅/영업 부서, 편집 부서, 기획 부서 이렇게 나뉘어 있는데, <필로소픽>같이 작은 출판사에서는 이 업무들을 조금씩 다 겸하는 구조예요. 다만 모두가 다 똑같은 일을 한다기보다는, 각자의 장점에 맞춰서 업무를 달리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기획 쪽에 강점이 있어서 기획자로 주로 일해요. 또 프랑스어를 할 줄 아니까 프랑스 책을 검토하고 번역자를 구해서 번역한 뒤에, 오역이 없는지 검수하는 일을 해요. 초반에는 SNS 관리나 영업도 맡았습니다.

Q. 평소에는 어떻게 근무를 하는 편인가요?

A. 초창기에는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했어요. 매일 회의를 하는데 월요일은 기획할 책을 들고 가서 이 책을 내도 될지 안 될지에 대해 서로 검토하는 회의를 합니다. 유사한 주제의 도서들과 비교를 하고, ‘이 책은 내도 될 것 같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경쟁력이 있고 저런 단점이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몇천 부 팔릴 것 같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죠. 말은 쉬운데, 해당 책 혹은 작가의 인지도, 출판 트랜드, 최근 이슈가 되는 담론, 개성 등 수많은 것들을 고려하는 편입니다.

나중에는 제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을 회사에 요구했고, 받아들여졌어요. 그래서 그날그날 일이 주어진 만큼 재택근무를 하되 매주 월요일 기획 회의에는 참석하는 형태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원래는 회사에 출근하는 걸 전제로 해서 일을 하게 되었을 텐데, 개인 사정이라고 해서 재택근무를 장기간 허용해준 걸 보면 회사 분위기가 그런 쪽으로는 좀 유연한 편인가요?

A. 그렇죠. 다만 편집자의 일은 업무 특성상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긴 해요. 과제하는 느낌인 거예요. 예를 들어 그날 40페이지 정도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면, 40페이지까지만 하면 됩니다. 편집을 안 할 때는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에 외근을 나가요. 대형 서점에는 보통 북매니저가 있는데, 그분들한테 우리 출판사 신간 좀 매대에 보이게 진열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해요.

Q. 기획자 입장에서 <필로소픽> 출판사의 매력은 뭘까요?

A. 대표님이 철학책을 보는 눈이 좋아서, 논리적이고 깊이가 있는 철학서를 낼 수 있다는 게 매력이죠. 특히 영미철학에 애정이 있어요. 하지만 영미철학 같은 경우는 마니아 독자층만 읽는 편이라서, 최근에는 더 많은 독자를 공략하려는 목적으로 사람들이 흔히들 접하는 대륙철학을 다루는 책도 출간하는 중입니다. 앞으로는 인도철학이나 중국철학에도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또한 사람들이 아쉽게 놓친 책들을 복간하고 있기도 해요. 또 자랑할 만한 게 있다면, <필로소픽>은 다른 건 몰라도 해외 원서의 번역은 좋아야 한다는 것이 대표님의 소신이에요. 번역에 진짜 엄격한 편입니다.

Q. 복간 작업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세요.

A. 절판되었거나 품절된 책을 다시 내는 작업입니다. 어떤 책이 절판되었다고 하면, 판권을 문의해서 아직 판권이 안 팔렸으면 바로 잡아 오는 거죠. 우리나라 인문서 출판시장의 상황이 열악해서, 사회과학/인문 분야의 중요한 책 중에 절판된 경우가 많아요. 그걸 빨리 집어서 복간하는 것이 편집자의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입니다. 희소성이 있고 사람들이 필요로 할 것 같은, 그러면서 고전성이 있는 책을 주로 복간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예전에 프랑스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의 책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를 복간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 책의 경우는 레비스트로스가 중요한 인문학자이긴 하지만 프랑스의 당시 시사 문제(*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는 프랑스에서 2013년 출간되었다)를 다루고 있어서 시의성과 저자의 인지도는 있지만 고전성은 떨어진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복간하지 않았죠.

Q. 기획했던 책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지금 번역 중인 프랑스의 사회학자 기 드보르의 회고록 <파네지리크Panegyrique>가 제일 애착이 가요. 두 번째로는 출간 예정인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우엘벡의 에세이 두 권에 관심을 많이 쏟고 있습니다.

Q. 별로 관심이 없는 주제의 책이나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을 담은 책도 다뤄야 할 때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럴 때는 어떻게 접근하는 편인가요?

A. 최대한 개인의 생각과 일을 분리하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일하지 않나요? 동의하지 않는 주장이더라도 문장이 얼마나 좋은가에 집중해서 보려는 편이에요. 앞서 말했던 미셸 우엘벡의 경우도 자기를 ‘우파 아나키스트’라고 주장할 정도로 논쟁적인 작가인데, 그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Q. 그런데도 우엘벡의 책에 관심을 쏟게 된 이유는 뭔가요?

A. 그가 현실을 바라보는 렌즈는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엘벡은 오늘날 현대사회가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한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가장 낙오된 사람들은 가난한 남성들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 인식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여성이나 무슬림들을 차별하는 서술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의 대표작 중 <복종>은 이슬람 혐오라는 비판을 받기도 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의 문제의식을 전달함과 동시에 비판점도 남겨두길 원했어요.

 

K님이 편집했던 책들.

K님이 편집했던 책들.

 

Q. <필로소픽>에서 일하면서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의 책인 <몽테뉴 여행기>를 편집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프랑스어 원본을 옆에다 펼쳐놓고 읽는데 몽테뉴가 온천욕을 하는 내용이 너무 많은 거예요. 몽테뉴 본인이 출간을 목적으로 쓴 일기가 아니라 사후에 발견된 일기를 출간했던 거라서 정보가 정제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목욕하는 얘기를 너무 세세하게 적어놓았더라고요. 소위 말해서 ‘TMI’가 너무 많아서 읽으면서 좀 괴로웠습니다(웃음).

Q. 기획자로서 느끼는 고충은 없나요.

A. 아이디어가 쥐어짜도 안 나올 때가 있는데, 그때가 제일 힘들어요. 매주 기획 회의에 무언가를 들고 가야 하다 보니 그런 게 힘든 부분이죠. 아마존이나 프랑스 사이트를 둘러보거나 해외 문학상 후보목록을 뒤지고, 제가 아는 선에서 ‘이런 주제의 책을 내면 재밌겠다’ 제안하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을 때가 있어요. 또 제가 바라는 주제의 책을 해외 사이트에서 찾았는데, 순위가 별로 높지 않아서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Q. 책을 내려고 하는 저자들이 출판사 문을 두드리기도 하지 않나요?

A. 그렇죠. ‘이런 주제의 책을 내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이 가끔 와요. 그런데 저자들이 책을 써놓고 어느 출판사에 투고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 보니 목적에 맞지 않는 글들이 오기도 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책을 내고 싶은 저자들이 출판사의 출간 리스트를 한 번 훑어본 뒤에 투고 메일을 보내면 더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목적에만 맞는다면) 출판사 투고는 언제나 환영입니다(웃음).

Q. 보통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 편인가요?

A. 제가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서, 책 뒤의 참고문헌에서 힌트를 많이 얻어요. 참고문헌을 뒤지다 보면 지금 쓸 만한 것들을 많이 건질 수 있어요. 그리고 대학원 수업에서 다루는 원서들, 영화, 기사 등을 많이 참고하기도 해요. 유명 해외 저자의 경우 한국에 출간이 안 된 책들을 모두 뒤져서 출간할 만한 게 있나 보는 일도 있습니다.

Q. 받는 급여에 비해 업무의 강도는 어떠한지 듣고 싶습니다.

A. 그달에 출간되는 책의 양이나 내용, 성향에 따라 업무의 강도도 달라져요. 다만 매일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일하고 9 to 6에 맞춰서 돌아가는 출판사다 보니까 야근과 회식이 없어서 집에서는 온전히 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괜찮습니다. 오늘 일을 덜 했으면 내일 조금 더 하는 식이죠. 그리고 학기 중에는 재택근무 위주로 하지만 방학 동안에는 출근해서 일하게 될 것 같아요.

Q. 기획자로서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A. 저는 제가 빈틈을 잘 파고든다고 생각해요. 무슨 말이냐면, 다른 출판사에서 먼저 냈을 법한 책인데 아직 내지 않은 책들의 판권을 최대한 빨리 잡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주어진 상황 안에서 빠르게 대응하는 일만큼이나 사람들이 놓치고 간 것 중에서 더 좋은 것을 캐내는 게 중요하거든요.

Q. 출판사의 이름이기도 한 철학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철학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에 딴지를 거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것들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를 주는 게 철학이 아닐까요?

 

#대학원생과 출판사 기획자

Q. 지금은 대학원을 다니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전업 기획자가 아닌 셈입니다. 개인 공부와 출판사 업무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데에 애를 먹고 있진 않나요?

A. 오히려 대학원을 다니면서 출판사 기획 업무를 하니까 더 좋은 게,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어요. 웬만한 해외 원서는 뒤지면 다 나오니까 좋죠. 수업이 없는 날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뒤져봐요. 또, 강의 시간에 언급된 책인데 국내에 발간되지 않은 책들도 눈여겨보는 편이죠.

Q. 대학원 공부가 출판사 업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거네요?

A. 그렇죠. 그리고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학계에서 요즘 어떤 논의가 활발한지 빨리 따라잡을 수가 있어요.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거죠. 결론적으로, 제 입장에서 ‘대학원생’이라는 정체성과 ‘출판사 기획자’라는 정체성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출판 기획 업무는 대학원을 다니는 당분간은 계속 병행할 것 같네요.

Q. 학부에서는 국문학과 프랑스어를 공부했던 거로 아는데요, 출판사에서 일하려면 전공이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A.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들은 출판사의 규모와 관계없이 해외 문학 편집팀 같은 곳에서 많이 찾기 때문에, 외국어 전공이면 유리하긴 하죠. 국문학 전공이면 맞춤법이나 어법 같은 걸 더 수월하게 검토할 수 있으니까 좋고요.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어문 계열 전공들을 좀 선호하긴 해요. 다만 요즘은 출판예비학교나 출판 아카데미 같은 것들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전공과 무관하게 출판사 업무에 대해 교육받을 수 있어요. 그래도 외국어 능력을 갖춰놓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K가 편집했던 책.

K가 편집했던 책.

 

#앞으로의 계획

Q. 책이 잘 안 팔리고, 사람들이 책을 잘 안 읽는다는 얘기가 많잖아요. 출판사 기획자의 관점에서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셨나요?

A.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세상은 마니아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그렇다면 책을 읽고자 하는 마니아들의 취향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을 타겟팅해서 타이밍을 잘 잡는 게 중요하죠 결국엔. 물론 진짜 잘 팔릴 거로 생각한 책이 안 팔리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예측을 하는 거긴 해요. 하지만 결과를 확실히 내다볼 수 있는 책은 없다고 생각해요.

Q. 마니아들을 상정하고 책을 내는 거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루는 입장에서 사람들이 책을 잘 안 읽는다는 분위기를 실감할 것 같아요.

A. 사람들이 책을 잘 안 읽게 된 데에는 책에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열정이 부족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특히 집중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책보다 마블영화가 재밌는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책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존재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저 거기에 몸을 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마니아들이 있어서 버티게 될 겁니다. ‘덕질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을 정말 좋아해요.

Q.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은 또래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A. 출판사에서 일하는 게 예상외로 힘들어요. 그래서 사회초년생들이 이 일을 처음 접하고 얼마 안 지나서 질릴까 봐 걱정됩니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지켜나간다는 마음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책과 출판업에 관한 공부는 결국 세상에 관한 공부라고 봐요. 출판사에 들어가고 나서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아, 가장 중요한 게 있는데, 출판사 업무는 육체노동이자 지식노동이니까 허리와 손목, 눈 건강을 꼭 지키세요. 특히 손목 건강을 위해서 마우스와 키보드는 좋은 제품을 사용해야 합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