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자 인터뷰] 보이지 않는 가치를 발견하는 기획자

2019-11-25T15:11:44+00:002019. 11. 25.|

슬로워크의 기획자 김한솔 님을 만나다.

글/ 정희진(jeonghj16@daum.net)
사진/ 홍하은(hongeny@naver.com)
박민규(meengyu7296@gmail.com)

잠재된 가치를 찾아내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바꾸는 일, 가야할 길을 찾아내어 지도로 바꾸는 일. 바로 기획자 김한솔 님이 하는 일이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으며 보이지 않는 가치를 어떻게 발견하는지, 김한솔 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가 진행된 슬로워크의 회의실에서, 뒷모습의 김한솔 님.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슬로워크의 기획자 김한솔입니다. 기획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있어요. 특히 사회적 영역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컨설턴트나, 브랜드 스트레티지스트(strategist:전략가)라고 할 수 있어요.

 

[기획자의 일]

Q. 업무를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세요.

A.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요. 브랜딩 프로젝트도 하고, 캠페인 프로젝트를 맡아서 캠페인을 설계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최근엔 대한간호협회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의 브랜딩을 했어요. 브랜딩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그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어떤 비전으로 그 일을 해나가는지, 이런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집중했어요. 그래서 여러 간호사 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조직 워크샵도 진행해서 그들의 코어 정체성을 발굴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비주얼 컨셉 도출 등을 했습니다.


Q.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어떤 고정된 진행 순서가 있지는 않아요. 프로젝트마다 프로세스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에서 전 국민 캠페인을 만들고 싶다고 하여 미세먼지 관련 캠페인을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요. 이 프로젝트 같은 경우에는 먼저 고객(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과 협의해서 대국민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미세먼지를 선정하였고, 캠페인의 타겟을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가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독거노인 분들로 정했습니다. 노인 분들께 무엇이 필요한지 알기 위해서 노인정에 직접 나가서 참여관찰도 하고, 데스크 리서치도 진행했습니다. 저희가 제공하는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는 환경단체 전문가 검토도 받았어요. 이후 캠페인의 코어 콘셉트를 정하고, 네이밍, 메시지, 디자인 그리고 캠페인 운영 설계를 하는 과정으로 진행됐어요.

 

김한솔 님이 참여한 자원봉사센터 미세먼지 예방 캠페인 프로젝트의 다양한 소품들.

김한솔 님이 참여한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미세먼지 예방 캠페인 프로젝트의 다양한 소품들.


Q. 한 프로젝트에는 기간이 얼마나 소요되나요?

A. 천차만별이에요. 클라이언트 쪽의 기획이나 준비가 확실한 상황에서 디자인만 진행하면 한 달 안에 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아요. 저희는 브랜드 전문가로서 클라이언트와 파트너로서 일하는 과정을 선호합니다. 주도적으로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리서치, 컨셉 발굴, 전략 보고 등을 모두 한다면, 3개월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Q.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프로젝트를 받을 때도 있나요? 그럴 땐 어떻게 접근 하시나요?

A. 낯선 프로젝트를 받을 때도 있어요. 혈액으로 질병을 검사할 수 있는 AI 건강 진단 키트 프로젝트를 맡았던 적이 있어요. 의뢰인 쪽에서 문서가 왔는데 굉장히 기술적인 언어로 되어 있어서 매우 낯설었어요.
이럴 때는 글을 세세히 이해하기 보다는 맥락적으로 바라보려 해요. 예를 들어 수능의 국어 과목에서 비문학 독해를 할 때도 ‘양자역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양자역학’을 어떤 맥락에서 얘기하는지 문맥상으로 파악하면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맥락을 파악하며 접근해요.


Q. 프로젝트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순간이 있나요?

A. 팀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 속에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요. 또는 골똘히 고민하다보면 나오는 경우도 많고요. 사례들을 많이 찾아보기도 합니다.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Q.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팀원과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나요?

A. 팀원끼리의 의견충돌은 잦지 않아요. 설령 팀원끼리 의견 차가 있더라도 저는 논의 속에서 서로의 주장을 다각도로 봐주며 진행하는 걸 좋아하기도 해요. ‘너의 주장이 옳지 않을 수도 있어’라고 서로를 검증해주면 프로젝트가 더 탄탄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대개는 우리끼리 토론하더라도 답이 고객에게 있을 때가 많아요. 우리는 그들의 일이 잘 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요.


Q. 업무 중 특히 어려운 것이 있나요?

A. 프로젝트의 가치와 방향성 등이 언어적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도 그걸 디자인하여 비주얼화한 것을 고객(의뢰인)에게 컨펌받는 것이 쉽지 않아요. 언어는 서로 이해하는 정도를 맞출 수 있는데, 비주얼은 똑같은 언어로 말해도 서로 각자 다른 것을 상상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 부분을 조율해 가는 과정이 항상 어렵습니다.


Q. 일을 하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A. 스위치를 꺼버리듯이 모든 생각을 멈추고 휴식을 취해요. 그리고 일 외적으로는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않아요. ‘뭘 먹지?’ 같은 일상의 고민들은 최대한 하지 않고 심플하게 처리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옷을 어떻게 입을지 고민하지 않고 쇼핑몰의 코디를 그대로 삽니다. (웃음)


Q. 혹시 직업병이 있으신가요?

A. ‘이걸 왜 했지?’라고 고민하는 버릇이 있어요. 얼마 전에는 지하철역에서 광고를 보고 ‘이걸 왜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무언가를 볼 때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이걸 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하고, 그런 호기심을 갖는 버릇이 있어요.


Q. 일을 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A. 일에 빠져드는 것을 좋아해요. 일을 대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체력소모가 많은 편이에요. 그냥 생각 없이 빠르게 처리하는 것보다 매 순간 고민을 담아 작업할 때 뿌듯합니다.

 

Q.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진심을 다해 만드시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제일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A. 지구마을 브랜딩 프로젝트가 생각이 나네요. 지구마을은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고 공정무역을 실천하는 공정무역가게인데요, 이 지구마을과 함께 공정무역에 대한 이미지를 전환시키는 작업을 했었어요.
공정무역은 보통 ‘어려운 사람을 도와서 구매하는 거야’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 것보다 ‘그들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프레이밍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공정무역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더 가깝게 연결해주는 일이다’라고 정의를 내리며 ‘Look Around Our Earth And Us’라는 슬로건을 디자인했어요. 집중해서 3~4개월 간 했던 프로젝트라 기억에 많이 남네요.

 

김한솔 님이 참여한 지구마을 프로젝트의 다양한 소품들.

김한솔 님이 참여한 지구마을 프로젝트의 이미지.


Q. 일을 하며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A. 제가 한 브랜딩이 비즈니스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을 때 ‘내가 한 브랜딩이 그저 그림만 그린 게 아니구나. 이게 실제로 효과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뿌듯해요. 특히 최근에 지구마을이 소셜 프렌차이즈로 2호점이 이번 10월에 생겼더라고요. 프로젝트 이후에 성과가 있던 거라고 생각돼서 뿌듯했습니다.

 

[건축학도에서 브랜딩 전문가가 되기까지]

Q.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셨나요?

A. 학교 다닐 때부터 소셜 섹터 활동을 많이 하다가, 졸업 후 소셜 벤처에 들어가 일을 하며 브랜딩을 접하게 됐어요. 저는 사실 디자인을 전공한 게 아니라 실내건축을 전공했는데, 브랜딩이 건축과 비슷한 면모가 있더라고요. 이후 신입 디자이너로 슬로워크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Q. 건축과 브랜딩은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A. 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일이 건축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소프트하고 작은 건축이요. 개념을 쌓고, 그것을 물리적 형태로 만들어내는 모습이 브랜딩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어요.
저는 故 정기용 건축가의 생전 마지막 작업인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좋아해요. 그는 건물을 짓기 위해 무주 일대의 어르신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그는 마을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르신들이 먼 거리의 목욕탕에 가기 위하여 매번 버스를 빌려서 나가신다는 걸 발견합니다. 그래서 면사무소에 목욕탕을 만들었어요. 그는 건축을 통해 그분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걸 찾아내서 그걸 해결했어요. 저는 심미적으로 화려한 건축을 보면서, ‘내가 저런 것을 만들고 싶은가?’라고 생각했을 땐 스스로 확신이 없었지만, 故 정기용 건축가의 작업을 보면서 이런 서비스적인 건축의 모습이 내가 하고 싶은 방향이라고 생각했어요.
디자인 영역에서도 브랜딩은 마냥 아름답게만 꾸밀 수 없는 측면이 있어요. 이해관계자도 정말 많고 다양한 것들을 고려해서 시각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내죠.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며]

Q. 기획자가 되기 위해선 평소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할까요?

A. 열린 감각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교육 프로그램도 찾아서 듣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을 ‘일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한다면 이 일에 잘 어울릴 거예요.


Q. ‘브랜딩은 ○○이다.’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A. ‘브랜딩은 모든 것이다.’ 브랜드가 고객과 제품과 서비스가 만나는 접점에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브랜드는 계속 살아서 움직이는 지속하고 실행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브랜딩은 제품과 서비스에 관한 모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꿈이 있다면?

A. 브랜딩을 하다 보면 아쉬움이 들 때가 있어요. 제가 고객(의뢰인)이 원하는 가치와 서비스를 잘 정리해서 드려도, 이것을 잘 만들어내는 건 그 기업의 몫이잖아요. 제가 그 브랜드를 표현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제로 그 브랜드가 잘 운영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 제 일에 아쉬움이 남아요. 그래서 앞으로 제 커리어가 더 변화한다면, ‘프로덕트 오너(Product Owner)*’가 되어보고 싶어요. 좀 더 전체적인 관점에서 브랜드를 배우고 싶습니다.

* 프로덕트 오너(Product Owner) : 제품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담당하고 관리하며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프로덕트 매니저’라고도 한다.


Q. 이 일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드려요.

A. 생활 속 이곳저곳에서 문제를 많이 발견하고 그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하는 캐릭터라면, 그리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면 이 일을 재밌게 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창조적인 일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해요. 흔히 안정된 길을 가라는 말을 많이 듣잖아요. 그것도 좋겠지만 본인이 가진 능력이 이쪽이라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