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자 인터뷰] 선율과 소통, 그 사이

2017-01-30T22:32:38+00:002016. 12. 31.|

선율과 소통,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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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디하이트>

 

가끔 귀를 붙잡는 음악들이 있다. 마치 내 얘기인 양 가사를 곱씹게 될 때나, 감정이 미묘하게 건드려질 때. 난 그 음악을 몇 번이고 다시 튼다. 그런 점에서  <디하이트>의 ‘잘 지내니’는 많이 재생한 곡’에 포함되기 충분했다. 친구 MP3에서 듣자마자 바로 다운받을 정도였으니까. 아마 절실한 노력 탓일 것이다. 다채로운 감정과 생각을 선사하는 일을 뜻깊게 여기는 그들이기에. 단순히 음악을 상업적인 용도가 아닌 소통의 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그들. 손가락을 딱딱거리며 맞추는 박자 하나, 흥얼거리는 콧노래에도 리듬이 흘러나오는 <디하이트>의 음악 얘기를 들어봤다.

글.  김예인 (ske0719@naver.com)  /

사진.  쭈 (odwg95@naver.com)

 

Q. 안녕하세요, 소개 한 번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밴드 디하이트의 드럼을 맡은 최성한입니다.

 

Q. 성한씨가 소속된 밴드가 원래 ‘디하이트’였다가 ‘보이후드’로, 그리고 또다시 ‘디하이트’로 이름을 바꿨다고 알고 있어요. 2번이나 이름을 바꾼 이유가 있나요?

사실 가장 초창기의 밴드 이름은 ‘단두대’였어요. 중학교 때 처음 밴드를 시작할 당시 ‘혼수상태’나 ‘촌철살인’ 같이 센(?)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생각했을 때 가장 무시무시한 살인무기인 ‘단두대’가 밴드이름이 되었던 거죠.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이름을 다시 짓게 됐어요. 단두대의 ‘D’와 맥주 ‘하이트’를 합쳐서 만든 ‘디하이트’, 그게 바로 지금의 ‘디하이트’에요. 그 이후 그 이름으로 쭉 활동을 해왔는데, 특별한 뜻도 특색도 없다는 자격지심이 들어서 늘 밴드 이름에 대한 고민이 따르더라고요. 그래서 새로 앨범을 내면서 ‘보이후드’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시도했어요. 저희 보컬이 아담하고 귀여운 소년의 이미지라서, 그 이미지에 잘 맞는  ‘소년의 어린 시절’이라는 뜻이었죠. 근데 안타깝게도 이름을 바꾼 후 또 다른 고민에 시달리게 됐어요.  막상 이름을 바꾸다 보니 그동안 ‘디하이트’가 쌓아온, 아주 미미하지만 소중한 인지도와 팬들을 체감하게 되었어요. 결국 고심 끝에 다시 ‘디하이트’로 돌아가기로 했지요. 대신 이번에는 뜻이없던 본래의 ‘D’hait’라는 이름과 다르게 ‘Delight(기쁨)’와’High(높다)’를 결합한 ‘DEHIGHT’ 라는 이름으로 정하게 되었지요. 극강의 기쁨이라고 해석하고 싶어요.(웃음) 그 때를 계기로 밴드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건 절대 함부로 바꾸거나 마구잡이로 지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느꼈어요. 다시는 이름을 바꾸진 않으려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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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후드>로 활동했을 당시 ‘잘 지내니’ 뮤직비디오 촬영 중

 

Q. 초창기에 기타를 담당하다가, 드러머였던 밴드 동료가 그만두면서 드럼으로 전향했다고 들었어요. 

한 멤버가 그만둔 후 드럼 자리가 비게 되면서 새 멤버를 영입할지, 기존 멤버가 악기를 전향할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 중학교 때부터 쭉 함께하던 팀에 멤버가 추가되면 새 멤버가 적응하기도 힘들고, 멤버들의 합이 흐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결국 제가 기타를 내려놓고 드럼을 치기로 했어요. 밴드를 하면서 이런저런 악기를 다뤄봤던 게 많이 도움됐지만, 생각보다는 쉽지 않았어요. 연주가 안 되는 부분을 주구장창 연습하다가 손목 삼각 섬유 연골이 파열되기도 했거든요. 흔히 ‘손목 디스크’ 라고 부르기도 하는 증상인데,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어요.

 

Q. 본격적으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때, 제가 심각한 게임 중독이었어요. 완전히 폐인이었지요. (웃음) 어느 정도냐면 컴퓨터 2대를 메크로로 돌리면서 게임을 했던 정도? 그런 제게 아버지가 가끔 기타를 가르쳐주시곤 했어요. 아버지가 취미로 기타를 치곤 하셨거든요. 게임에서 기타로 눈을 돌리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하는데. (웃음) 그러다가 중 3때 CA를 정하면서 취미가 아닌 본격적으로 기타를 배우게 됐어요. 제가 기타를 조금 친다는 걸 담임선생님께서 아시고는 통기타부로 들어가라고 권유하셨거든요. 그래서 거기서 본격적으로 통기타를 치다가, 더더 파고들면서 일렉기타도 치게 되고, 밴드까지 하게 된 거죠.

 

▲ 의 음악 작업실

▲ 최성한씨의 개인 작업실

 

Q. 한국예술교육진흥원 (방송 전문인력 양성 교육기관. 이하 한예진)에 장학생으로 뽑혔다고 하던데.

한예진이 주관한 [대한민국 청소년 그룹사운드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었어요. 그때 이사장님의 눈에 띄어서 장학생으로 선발이 되었죠.

 

Q. <디하이트> 밴드의 데뷔 앨범을 한예진에서 만들어줬다고 알고 있어요. 재학생 중 처음 있는 사례라던데, 어떻게 그 기회를 얻게 됐나요?

저희 첫 앨범을 데뷔 앨범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가수들에게 ‘데뷔’라는 기준은 참 규정짓기 모호한 것 같아요. 누군가는 공중파에 첫 출연을 하면 데뷔라고도 하고, 갑작스레 한 번 빵 뜨게 되면 데뷔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저희는 아직 그런 기준의 데뷔를 한 것이 아니라, ‘첫 앨범’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학교에서 첫 앨범을 100% 만들어 주신 건 아니에요. 앨범을 제작하는 데 총 120만 원이 가량 들었는데, 학교에서는 대략 40만 원 정도를 보태주셨어요. 그렇지만 교수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꽤 저렴하게 앨범을 만들 수 있었죠. 아시는 분들께 부탁드려서 녹음실을 빌려주시기도 하는 등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셨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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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하이트>의 첫 앨범

 

Q. 음악은 스스로 독학하거나, 음악가 밑에서 따로 배우는 것보다는 전문적인 기관에서 교육받는 것이 더 도움되는 것 같나요? 

아무래도 전문적인 음악 기관에서는 교수님께서 1:1 레슨을 해주시기도 하고, 수업 커리큘럼도 체계적이라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요. 또 학사라는 학위를 가질 수도 있고. 근데 아무래도 음악은 창조적인 예술이라, 스스로 독학하면서 음악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해요. 독학할 때 어려움을 느끼면 몇몇 교수님이나 음악가 동료의 조언으로 극복하는 것이 좋고요.

 

Q.  제 2회 대한민국 대학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대학 가요제 심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중에서 디하이트가 가장 자신 있는 건 어떤 건가요?

대학가요제뿐 아니라 여러 가요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팀의 자작곡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작곡에 멤버들의 연주 실력과 편곡능력이 뚜렷하게 묻어나는지, 팀의 합과 조화로움이 잘 나타나는지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보컬에서 그 팀의 색이 잘 나타나게 하는 것도 관건인 것 같아요. 어느 밴드든지 다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도 늘 자작곡이 가장 자신 있던 것 같아요. 자작곡에 팀의 색깔과 실력, 편곡 능력이 보여서 수상을 했던 것 같고요.

 

Q. 그러면 작사, 작곡은 주로 누가 담당하나요?

베이스를 담당하는 멤버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같이 작사, 작곡해요. 모든 수익은 n분의 1로 나누지만, 저작권료만큼은 곡을 만든 사람에게 돌아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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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하이트>의 버스킹 공연

 

Q. 합주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하나요? +합주나, 곡 작업은 주로 어디서 이루어지나요?

합주하는 날을 규칙적으로 정해두지는 않고, 새로운 곡이 나와서 연습하거나 공연을 준비할 때 해요. 이미 악기와 보컬 간의 합을 맞추고 연습이 끝난 곡은 개인적으로 연습하고 따로 합주하지는 않고요. 보통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합주나 작업은 보산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하게 돼요. 곡 작업은 각자 집에서 진행하다가, 작업실에 와서 다 같이 공유하고 세세히 작업하곤 하지요.

 

Q. 하나의 앨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듣고 싶어요.

먼저 작사 작곡을 하고, 음악이 준비되면 악기들과 보컬 노래를 녹음하게 돼요. 그다음에 편집하게 되는데, 이 때 믹싱 (작곡할 때 만들어진 악기별 트랙들을 서로 잘 어우러질 수 있게 각종 이펙터 -소리를 변화시켜 다양한 효과를 얻을수 있는 장치- 를 걸어주고 볼륨 조절을 해 가면서 서로 소리가 겹치거나 혹은 묻히지 않게 다듬어 주는 과정) 하고 마스터링 (CD나 Mp3 음원을 발매하기 위해 그에 맞게 곡을 최종적으로 다듬어 주는 일. 그 곡의 볼륨, 선명도 등등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 준다.) 과정을 거쳐요. 여기서 정규 앨범이냐, 디지털 싱글이냐에 따라서 다음 방법이 갈리게 돼요. 우선 정규 앨범이면 CD에 곡을 삽입하고 앨범 자켓 (커버 이미지) 과 소개 글을 작성한 뒤 유통대행사에 넘기게 돼요. 그런데 만약 디지털 싱글 앨범이라면 CD에 곡을 삽입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유통대행사를 거쳐서 웹상으로만 곡이 발매가 돼요. 보통 유통대행사에서는 곡의 수수료를 가져가게 됩니다.

 

Q.  최근에 음악 색깔을 바꾸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이전과 비교해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가고 있나요?

원래 추구했던 음악은 멜로디가 좋은 펑크락이라 ‘팝락’ (팝 음악과 록 음악이 혼합된 장르. 대개 가벼운 가사와 알기 쉬운 기타 리프로 구성되어 있다) 이라는 장르로 정했었어요. 그런데 앞으로는 ‘락’의 색을 다시 규정해볼 생각이에요. 대부분 한국에서 ‘락’이라고 하면 김경호 님이나 신해철 님 음악처럼 강렬한 비트와 높은 고음만을 떠올리는데, 우리가 만들 앞으로의 ‘락’은 미래지향적인 락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락큰롤은 절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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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하이트>의 한강 공연

 

Q. 향후 대한민국 음악 시장의 흐름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음악이란 게 지극히 주관적인 예술이라,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저 개인적인 견해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예전부터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음악 시장은 항상 팝 음악의 흐름을 따라갔던 것 같아요. 우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어쿠스틱한 음악은 물론이고, 힙합 또한 우리나라에서 대중음악이 되었지요. 또 최근의 흐름을 보면 요새 팝에서 Chainsmokers라는 Dj가 파퓰러한 멜로디와 가사를 합해 럭셔리한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빅뱅이 ‘에라 모르겠다’라는 곡에서 그런 형식을 취했더라고요. 이처럼 빌보드 탑 음악이 나오면 비슷한 장르나 사운드를 한국에서 활용해서 케이팝의 선두주자들이 유행을 시켜왔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움직임은 계속되고, 어쿠스틱이나 힙합 음악은 꾸준히 대중가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할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한국인은 노래방에서 고음을 지르면서 과시하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한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어서 발라드는 꾸준히 사랑받을 것 같아요.

 

Q. 궁극적으로 왜 노래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악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참 여러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흥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신나기도, 따스한 위로를 받기도 하죠. 또 음악이 던지는 화두에 의해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던져주는 일이 참 뜻 깊다고 여겨져요. 제 음악을 듣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공감해주면 뿌듯하고 행복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일이 즐거운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공연하는 것도 즐겁고. 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다 좋아요. (웃음)

 

Q. 음악을 통해 겪은 변화가 있나요?

원래 제가 엄청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음악을 하면서부터 변했어요. 아무래도 작사, 작곡 자체가 사람들한테 제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드러내는 작업이라 그런 것 같아요. 수많은 사람 앞에서 공연하다 보니 당연하게 변화된 탓도 있을 거고요. 또 기획사가 없다 보니 공연이나 앨범을 준비하기 위해 기획자나 유통대행사분들과 직접 만나고 부딪히는 일이 잦기도 했고. 그 뿐 아니라 여러 사람과 SNS로 소통하면서부터 더더욱 소심함이 사라지게 된 것 같아요. 제가 <디하이트> SNS 관리를 담당하고 있거든요. (웃음)

 

▲ <디하이트>의 프로필 사진

 

Q. 슬럼프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여태껏 저도 슬럼프를 참 많이 거쳐왔는데, 어떻게든 떨쳐 오려 애썼어요. 그 때마다 좌절하고 다 때려치울 수는 없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게,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슬럼프가 숙명이라는 것이었어요. 대중음악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자면 음악을 만들어서 순위 차트 중 높은 순위에 머물지 않으면 슬럼프, 호평도 받고 인기도 많지만 그 다음 앨범이 이전보다 뒤떨어지면 또 슬럼프, 마음처럼 연주가 안 되면 슬럼프가 오곤 하거든요. 그렇기에 그 좌절에 일일이 무너지지 말고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예컨대 중간에 턱턱 막히는 연주 구간을 휴식 기간을 가지고 며칠 뒤 다시 연습해보면 무난하게 잘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연주가 되기까지 필요한 연습량을 충족시킨 경우였죠.

 

Q. 자신과 같은 꿈을 꾸려 하는 이들에게 조언이나 한마디 해주실 수 있을까요?

스스로가 음악에 충분한 재능이 있고 자신이 있다면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구체적인 목표와 부단한 노력이 따라야 하지만요. 아마 모든 직업에 적용되는 얘기겠지요. 그래서 먼저 (곡을 만들고 싶다면) 어떤 장르의 음악을 만들고 싶은지, (악기 연주를 하고 싶다면) 어떤 악기를 누구와 어디서 연주를 하고 싶은지 미리 청사진을 그려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이때 중요한 건 슬럼프에 쉽사리 좌절되지 않는 정신 같아요. 그렇게 구체적인 꿈을 설정하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설령 처음 설정한 목표를 완벽히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음악과 관련된 꿈에는 근접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정말 뻔하디뻔한 얘기지만, 원래 당연한 말이 가장 실천하기 힘든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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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를 치는 <디하이트>의 성한씨

 

인터뷰는 성한씨의 기타 연주와 노래로 마무리 지어졌다. 함께 했던 2시간 중 가장 그다운 모습이었다. 기타 코드를 찾는 손은 물 흐르듯 유연했고, 노래하는 내내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 미소는 환희에 가득 찼다기 보단, 지극히 소소하고도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입에 걸린 웃음. 그는 천생 음악을 해야 하는 사람인듯 보였다. 흥에 겨운 그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내 어깨도 얼마간 들썩이는 듯 했다.